김정남 암살사건이 터진 지 불과 3주 만에 말레이시아를 다시 보게 된다. 관심을 넘어 놀라움이다. 지난 주말 말레이시아는 북한 대사를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전격 지정했다. 48시간 내에 떠나라는 사실상 추방령이다. 비인도적이고 반문명적인 행위에 대해 정면으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국교 단절도 고려 중이다.
말레이시아가 처음 각인된 것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일 것이다. 당시 국제 투기자본의 공격에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백기투항했다. 고금리 등 주권 침해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말레이시아의 해법은 정반대였다.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한 마하티르는 투기자본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외환시장을 걸어 잠그는 극약 처방으로 통화가치를 극적으로 방어해냈다.
어떤 해법이 옳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진행형이지만 말레이시아의 선택은 뒤통수를 치는 듯했다. 선진국들이 짜놓은 국제 금융질서에 도전한 용기에는 적잖은 박수도 쏟아졌다. 이번에도 비슷하다. “어떤 나라의 장기 말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레이시아의 당당함에 세계인들의 호응이 뜨겁다.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의 단호함도 부러움을 불렀다. 한 기자가 김한솔 입국설을 질문하자 ‘제발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면박을 줬고 루머는 단번에 종식됐다.
천안함 연평도 연평해전 금강산관광 등에서 봐온 우리 정부의 물러터진 대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천안함 피격 당시 정치권에는 북한과의 공동조사를 왜 안 하느냐는 요구도 넘쳤다. 이제 온갖 뉴스 부스러기와 가십이 빠르게 확산되며 팩트의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아무런 사과도 후속조치도 없는데 금강산관광을 풀고 경협을 재개하자는 주장이 대선판을 달군다.
말레이시아의 북한 다루기에서는 본질을 파고드는 집요함이 발견된다. ‘정당하고 위대한 관점’이다. 동시에 우리의 품격을 자문하게 된다. 돌아보면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다. 미얀마(버마)도 1983년 아웅산 테러 당시 북한과 단교했다. 말레이시아 근대화를 이끈 마하티르는 집권하자마자 동방정책으로 불리는 ‘룩이스트’를 주창했다. 서구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지금 우리는 ‘룩 아세안’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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