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까지 로봇·반도체 등 10대 산업 키우겠다는 정책
철강·태양광 전철 밟을 수도
중국 진출기업에 기술이전 압박…기술만 빼낸 뒤 퇴출 가능성 우려
불법 보조금도 WTO 규정 위반
[ 이상은 기자 ] 주중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가 중국의 제조업 육성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7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7일 펴냈다.
지난 5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간을 겨냥한 이 보고서는 중국의 제조업 ‘국가대표’ 육성 정책이 공급과잉을 유발해 해당 산업 전체를 늪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유럽 주요 기업이 중국에서 물건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려면 기술을 넘기라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며 중국이 선진국 기업에서 기술만 빼낸 뒤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토사구팽(兎死狗烹)’ 가능성을 우려했다.
◆시장경제와 배치되는 전략
EU 상공회의소가 지목한 중국 산업정책은 2015년 5월 발표한 ‘중국 제조 2025’ 정책이다. 2025년까지 중국의 제조업 수준을 독일과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2035년까지 독일 일본 중국 가운데 선두에 속하도록 하며, 2045년까지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제조업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전략이다.
독일이 2011~2013년 내놓은 4차 산업혁명(industry 4.0) 보고서를 본떠 향후 산업 구도를 어떻게 고도화할 것인지 궁리한 것이다. 다만 정부 역할보다 민간의 역할에 방점을 찍은 독일 보고서와 달리 중국은 정부 주도로 로봇산업, 반도체, 신에너지 차량(전기차) 등 10대 분야를 정해 구체적인 목표치를 상세히 기한별로 제시했다. 예컨대 중국산 전기차가 2020년까지 중국 내수시장의 70%, 2025년까지 80%를 차지해야 하며, 핵심 기초부품과 기초 소재 자급률을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 70% 달성하겠다는 식이다. 이 계획에서 “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뚜렷하게 줄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급 쏟아내 시장 망칠라
EU 상공회의소는 이 같은 목표가 “시장경제의 방법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며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사용될 정책 수단은 매우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외르크 부트케 주중 상공회의소 회장은 “(산업정책) 보고서가 구체적인 국내외 시장점유율 목표를 제시한 것은 드문 일”이라고 평가했다.
철강산업이나 태양광 패널산업 등 중국 정부가 공격적으로 확대한 부문마다 대규모 공급과잉과 수익성 악화로 몸살을 겪었던 것도 불안을 자극했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듯한 중국 국영기업들이 대량 공급에 뛰어들어 저부가가치 산업의 수익을 악화시킨 일이 하이테크 분야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만 뺏기는 외국 기업
유럽 기업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외국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이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지난 5일 전인대에서도 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실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는 점도 짚었다.
보고서는 “중국이 새로 도입한 규제에 따르면 신에너지차(NEV) 시장에 진입하는 유럽 회사는 단기적인 시장 진출을 위해 고급 기술을 내놓으라고 외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 정부가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세계무역기구(WTO) 위반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보스포럼에서 시 주석의 발언은 “매우 긍정적”이었다며 외국 기업을 평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트케 회장은 “정부가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중국의 정책은 대개 실망스러운 결과만 낳을 뿐”이라며 대규모 자본을 쓸데없이 낭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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