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북한 도발에 백악관 긴급회의서 트럼프 격노
이라크전 때 '사막의 폭풍' 작전 매뉴얼 채택
미국 유엔대사 "김정은, 비이성적인 사람"
[ 워싱턴=박수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웃음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국내에선 백악관 참모·장관들이 연루된 러시아 내통 스캔들로, 해외에서는 북한이 잇단 미사일 발사 도발로 그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는 전언이다.
두 가지 모두 그냥 둘 수 없는 현안이다. 방치하거나 물러서는 즉시 리더십에 큰 타격을 받는다. 그는 러시아 내통 스캔들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도청 지시’ 논쟁을 촉발시키며 맞불을 놨다. 내통이든 도청이든 조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와중에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다.
진짜 골머리는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 2월11일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휴양지에서 만찬하는 시점에 맞춰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어 이달 5일 다시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렸다. 이날 아침 열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북한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자신을 테스트했다며 격노했다고 한다.
백악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김정은과의 대화에 무게를 뒀다. 메시지를 전달할 대북특사도 선발해 준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2월 중순께 북한에 특사를 보낼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이튿날 터진 김정남 암살사건으로 틀어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미국 언론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 한국 내 전술핵 배치, 김정은 일가 자산 동결 등 미국의 강경 대응설을 보도했다. 워싱턴 외교가는 “백악관이 북한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으로 해석했다.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 것은 북한의 두 번째 미사일 발사 도발이었다. 미사일 발사가 ‘주일(駐日) 미군 타격훈련’이었다는 북한의 발표가 결정적이었다. 이후 백악관에서는 “동창리, 노동리 등 북한 내 핵·미사일 개발 관련 7곳을 정밀타격할 필요가 있다”는 구체적인 공격 목표가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1991년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의 ‘사막의 폭풍(operation desert storm)’ 작전이 대북 매뉴얼로 사용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한국 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착수에 이어 중국의 2위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한 강력한 벌금부과 조치 이면에선 훨씬 강경한 조치가 거론된 것이다.
백악관은 대외적으로 이를 “북한을 겨냥한 새 접근법”이라고 표현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8일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결정되면 바로 실행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 고위 인사가 ‘모든 옵션 검토’를 공식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 “비(非)이성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일본에서는 9일 ‘적국에 대한 선제적 타격 능력 보유 검토’ 발언(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나왔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오는 18일 중국을 방문한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틸러슨 장관의 중국 방문이 북한에 우회적으로 ‘최후통첩’을 전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중국 쪽에서 북한의 핵 개발과 도발에 제동을 걸겠다는 약속이 나오지 않으면 미국이 어떤 옵션을 사용할지 모른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대북정책 발표 시기를 틸러슨 장관의 방중 일정 이후로 미뤄두고 있다.
백악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선 북한이나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잘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리스크”라며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외교적 수사(修辭)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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