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간의 귀로 들으면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

입력 2017-03-09 18:07  

소리와 몸짓

칼 사피나 지음 / 김병화 옮김 / 돌베개 / 782쪽│3만5000원



[ 이미아 기자 ]
“내가 정말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연인끼리 다툴 때 흔히 하는 말이다. 물어보는 쪽은 답답하고, 듣는 쪽은 어리둥절하다. 질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서로 엇갈린다. 같은 언어를 쓴다면 그나마 낫다. 그마저 다르면 훨씬 난감해진다. 비틀즈의 히트곡 ‘미셸(Michelle)’을 떠올려 보자. 프랑스 여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영국 남자의 심정이 담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다’는 표현은 웬만큼 극적인 상황이 아니면 쓰기 어렵다.

미국 생태학자 칼 사피나의 《소리와 몸짓》(원제: Beyond Words)은 언어의 개념을 인간에만 국한하지 않고 동물 전체로 확장한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대중강연자로도 유명한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기준으로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한다. 인간에겐 마치 나팔소리 비슷하게 들리는 코끼리의 소리, 인간에겐 두려움의 대상인 늑대의 소리, 인간의 귀로는 잘 안 들리는 음파 영역의 범고래 소리도 “모두 그들의 언어”라고 단언한다. 또 “그냥 들어보라. 그들은 우리에게 말하지 않겠지만 자신들끼리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며 독자를 동물들의 언어 세계로 인도한다.

이 책의 주인공 격 동물은 케냐 암보셀리국립공원의 코끼리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북서태평양의 범고래다. 하지만 이들만 나오는 건 아니다. 저자의 반려견을 비롯해 엘크와 코요테, 침팬지, 오리, 송골매 등 여러 동물이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동물들 사례를 전할 때 종(種)으로 뭉뚱그리지 않는다. 가능한 한 개별 동물에 이름을 붙여 각각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그 동물은 ‘좀 더 특별한 존재’로 다가온다.

저자는 각 동물의 고유 언어를 소개하며 야생에서 보내는 생활상, 인간의 손에 파괴되는 생태계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코끼리는 나이가 곧 지위를 상징한다. 가장 나이 많은 암컷 코끼리가 가모장(家母長)이 돼 무리를 이끈다. 가모장 코끼리가 어떤 성격인가에 따라 무리의 모습도 각기 다르다. 코끼리는 긴 코와 커다란 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언어를 쓴다. 이를 통해 무리 내에서 가정을 꾸리고, 새끼를 양육하고, 가족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른바 ‘하울링(howling)’이라 불리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사실 울음이 아니다. 그건 그저 늑대의 언어 중 일부다. 늑대는 소리뿐만 아니라 다리, 꼬리 등으로 의사 표시를 한다. 또 철저히 사회적이고 개성이 강하다. 무리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함께 사냥 체계를 꾸려 공동 사냥에 나서며, 끊임없이 서열 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적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나름의 도덕체계까지 갖추고 있다.

범고래는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특유의 ‘서명 휘파람 소리’를 갖고 있다. 범고래는 대부분 지능이 높기 때문에 동물원에서 훈련되면 가끔 조련사를 거꾸로 속이기도 한다. 아울러 ‘바다의 왕’으로 군림하며 사냥꾼으로서의 지혜를 발휘하고, 바다 안개를 헤쳐 나와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선 발달심리학자들이 주창한 ‘마음이론’을 동물 연구에 함부로 주입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경험과 보디랭귀지를 근거로 삼고, 정보에 근거하는 짐작이 실제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며 “우리가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지내니’라고 묻는 것은 마음을 읽는 ‘독심’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가 가장 강력히 호소하는 건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인간이 아니라 각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의 언어와 마음을 바라봐야 한다. “이 책은 우리 바깥세상의 관점을 따른다. 그 세상에서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아니고, 인간 역시 다른 종족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800쪽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문체가 어렵지 않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책의 뒤표지를 덮고 나면 왠지 모를 먹먹함과 함께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언어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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