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
수입상품의 수입금액이 수출금액을 초과한 경우에 한 나라의 무역수지는 적자가 된다.
“멕시코와 무역협정 고치겠다”
미국 통계국이 낸 자료다. 1994년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이후 지난 30년간 미국은 약 1조달러 무역적자를 봤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계산서가 무역수지인데 그것이 적자다. 그것도 1조달러.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지금 미국 대통령)는 멕시코와의 적자 규모를 거론하면서 미국 백인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붙들었다. 멕시코가 자유무역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 멕시코 불법 이민자가 미국을 마약으로 물들인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국경벽을 쌓아야 하고 그 비용을 멕시코가 대야 한다고 트럼프는 공세를 폈다. 이 그래프만 보면 멕시코가 미국과 무역하면서 거둔 무역 흑자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트럼프 후보는 당시 멕시코와 맺은 자유무역협정을 손질해야 한다고 했다. 멕시코에서 만든 물건이 미국 시장에서 팔리다 보니 미국에서 생겨야 할 일자리가 안 생긴다고 트럼프는 열을 올렸다. 멕시코는 중국에 이어 많은 두 번째로 많은 상품을 수입한다. 반대로 멕시코의 미국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높다. 멕시코는 미국의 공장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없다면 멕시코 수출은 기반을 잃는다.
멕시코 물건이 싸고 좋은 탓도
그래프를 좀 더 자세히 보자. 1980년대 후반 미국의 멕시코 무역 적자 규모는 연간 약 20억~50억달러 규모에 그쳤다. 1990~1994년엔 미국이 흑자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NAFTA가 체결된 이후 미국의 멕시코 무역 적자가 급증했다. 자유무역 발효 이듬해인 1995년 적자 규모가 158억달러로 불어났다. 1999년 228억달러 적자, 2001년 300억달러 적자, 2003년 406억달러 적자, 2005년 498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무슨 법칙처럼 2년마다 적자폭이 100억달러씩 늘어났다. 그러다가 2007년엔 적자폭이 748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적자액까지 모두 더하면 약 1조달러나 된다.
여기서 잠깐 생각을 해보자. 무역적자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이 주로 사용하는 적자는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무역적자만 놓고보면 멕시코는 미국에 피해를 주는 나라가 된다. 그렇지만 멕시코는 미국에 중요한 공장 역할을 한다. 멕시코는 싼 임금으로 질 좋은 물건을 만들어 미국으로 들여보낸다. 멕시코 물건을 미국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는 것은 멕시코 물건이 좋다는 뜻이다. 미국은 아마도 멕시코가 아니었다면 다른 나라에서 그만한 규모의 물건을 수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유무역협정으로 관세장벽이 낮아진 만큼 미국 소비자들은 같은 소득으로 더 싸고 질 좋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실질소득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무역적자보다 국제수지가 중요
무역수지만 비교하면 멕시코가 미국에겐 미운 나라이겠지만 두 나라 간 거래는 무역수지만 봐선 안된다. 예를 들어 미국과의 무역으로 모은 달러가 어디로 갔겠는가? 멕시코 은행에 쌓여있을 수 있지만, 국제 간 자금은 그렇게 묵혀 있는 법은 없다.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돈은 돌고 돈다.
멕시코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거의 600억 달러 규모의 흑자를 보지만 약 514억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무역 흑자액 만큼 미국에 투자하고 있어 일방적으로 이익만 본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중국도 미국과 무역에서 흑자를 보지만 그 돈의 상당부분은 미국채 매입을 통해 미국으로 되돌아간다. 중국은 미국 국채에 1조 240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결국 두 나라간 국제수지를 정확하게 따져보려면 무역수지만으로 봐서 안된다.
미국 정치인들은 자주 ‘무역 적자’를 선거용으로 쓴다. ‘베이직 이코노믹스’를 쓴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은 “언론에서 보도하는 미국의 무역수지는 부분이 전체로 확대되어 ‘적자’라는 격정적인 표현으로 경고를 발동한다”고 썼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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