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안방서 앞마당 거리라면 '엄마'는 이불 속에 함께 있는 기분

입력 2017-03-12 18:39   수정 2017-03-13 05:53

김탁환 에세이집 '엄마의…' 출간


[ 양병훈 기자 ] “내 나이가 마흔네 살을 넘어 마흔여섯 살까지 건너가 버리자, 마흔여섯 살에 죽은 남자와 마흔네 살에 홀로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30년이 지났다. 마흔네 살이던 여자는 일흔네 살이 되었다. 그 시간을 이 여자는 어떻게 살아낸 걸까.”

《거짓말이다》 《노서아 가비》 등으로 유명한 김탁환 작가가 에세이집 《엄마의 골목》(난다)을 냈다. 올해 일흔다섯인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경남 진해 곳곳을 둘러보며 나눈 대화를 글로 옮긴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 작가의 어머니는 다섯 살 때 진해로 건너와 지금까지 줄곧 살았다. 어린 시절, 결혼생활,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보낸 30년의 세월 등 한평생의 기억이 도시 곳곳에 묻어 있다. 작가는 어머니와 함께 동네 골목을 걸으며 그 장소에 얽힌 추억을 전해들었다.

두 사람은 큰길부터 깊숙한 골목까지 진해 곳곳을 1년여 동안 누비며 얘기를 나눴다. 하루는 진해역에서 진해 행암동까지 이어지는 철길을 함께 걸었다. 어머니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만나 둘이 함께 걷던 길이다. 아들이 물었다. “무슨 이야길 하셨어요?” 어머니가 답했다. “기억나는 게 없네. 아니 이야길 거의 안 했어.” 못 믿겠다는 듯한 아들의 반응에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그냥 같이 걷는 게 좋았으니까. 나란히 걷는 것도 아니었어. 주로 네 아버지가 앞서가고 난 뒤따라가고. 그러다가 거리가 가까워지면, 눈 한 번 마주치고, 그럼 또 네 아버지가 앞서가고 난 뒤따라가고.”

김 작가는 목차를 비롯한 형식을 갖추기보다 자연스럽게 모친과 나눈 얘기를 글로 옮기는 데 초점을 뒀다. 어떤 글은 10쪽 가까이 이어지고 어떤 글은 한 줄이 전부다. ‘어머니’ 대신 ‘엄마’라고 한 게 인상적이다. 왜 그랬을까. 책에 설명이 나온다. “‘엄마의 골목’이 좋아요? ‘어머니의 골목’이 좋아요?” “엄마의 골목!” “왜죠?”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 어머니가 안방에서 앞마당 정도 거리라면, 엄마는 안방을 벗어나지 않고 한 이불 속에 있는, 그런 기분!”

김 작가는 “이 책을 쓴 건 점점 늙어가는 어머니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기도 하다”며 독자들에게 이렇게 권했다. “저마다의 골목을 엄마와 함께 걷는 독자들이 늘었으면 싶다. 더 늦기 전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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