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구내 일본 기업에 투자·세제·통관 혜택
도요타, 사우디 정부와 공장 신설 공동조사
사우디 원유 4대 수입국인 한국 '찬밥' 신세
[ 김동욱 / 박상익 기자 ]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우디에 일본 기업 전용 경제특구를 조성하기로 했다. 46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사우디 국왕이 양국 관계의 ‘대전환점’(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고 불릴 법한 큰 선물을 일본에 준 것이다.
반면 사우디산 석유를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구매하는 한국은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탓에 사우디 국왕의 아시아 6개국 순방 대상에 포함조차 되지 못했다. 정치 불안으로 수십년간 공을 들인 한국의 대(對)중동 협력 네트워크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사우디 비전 2030’ 합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만나 양국 간 경제협력을 가속화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양국이 합의한 ‘일·사우디 비전 2030’에는 일본 기업의 공장이나 연구기관의 사우디 거점 역할을 맡게 될 경제특구 조성이 포함됐다. 일본 기업 경제특구에서는 △일본 자본의 투자 규제 완화 △세제 우대 △통관 간소화 △인프라 정비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협력이 강화된다. 도요타자동차는 사우디 정부와 공동으로 사우디 현지 생산 가능성을 조사하기로 했다. 현지시장 점유율 30%대인 도요타는 현지 생산을 하게 되면 중동지역 장악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일본 3대 은행인 도쿄미쓰비시UFJ, 미즈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사우디종합투자원과 투자 촉진 및 서비스 개선에 협력한다.
글로벌 주요 증시에 올해 상장을 추진하는 세계 최대 석유회사 사우디 아람코를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발빠르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아람코 상장 관련 업무를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JX그룹과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 자원기구(JOGMEC)는 아람코와 석유 및 가스 기술개발 분야에서 협력한다.
일본 외무성은 양국 간 비자 발급 요건 완화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슬람 극단주의 수니파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가 준동한 이후 사우디는 기존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에서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며 “사우디가 경제·안보 분야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엔 방문 문의조차 없었다
사우디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를 적극 강화하고 나섰지만 한국은 소외된 모습이다. 살만 사우디 국왕이 지난달 26일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일본, 중국, 몰디브 등 6개국을 한 달에 걸쳐 순방하지만 한국에는 방한 관련 문의가 없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사우디 국왕의 방한을 요청했다”며 “하지만 이번 사우디 국왕의 아시아 순방과 관련해 우리 측과는 일정과 관련한 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글로벌 통계조사업체 OEC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 사우디산 석유를 331억달러어치나 구매했다. 중국(442억달러), 일본(425억달러), 미국(418억달러)에 이어 세계 4위의 사우디 석유 수입국이다. 역대 정부는 에너지 수입처 안정화와 최대 해외수주 시장인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적잖은 공을 들여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5년 3월 사우디를 방문해 중소형 원자로 사업을 비롯해 정보기술(IT), 보건·의료, 보안산업 분야 협력 강화를 모색했다. 이후 스마트 원전의 원자로 설계와 인력 교육 등은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지만 다른 산업 분야에서 양국 간 주목할 만한 추가 교류나 협력 확대는 없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답방 형식으로 사우디 국왕의 방한이 기대됐지만 갑작스런 탄핵사태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할 좋은 기회를 놓친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김동욱/박상익 기자 kimd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