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급성장하는 LCC, 안전부문 외 시장규제는 풀어야

입력 2017-03-14 17:33  

신설 항공사 진입 규제는 약인가 독인가

세계 항공시장 20% 차지 LCC…국내서도 국제여객 30% 분담
재무능력·소비자 편익 근거로 시장진입 막는 건 과도한 규제
항공 정비인력 양성해 안전 확보…공정경쟁 기반 닦는 게 최선



정부의 시장 개입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공익과 사익 간의 균형점은 그래서 언제나 뜨거운 담론이 된다. 서비스가 거래되는 항공시장에서 경험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항공시장이 커지면서 산업 초기부터 유지돼온 정부 규제를 풀어 경쟁체제로 전환하자는 항공시장 규제 폐지론이 대두됐다. 항공의 공익성을 지속시켜야 한다는 옹호론과의 논쟁은 뜨거웠다. 당시 자유로운 항공사 설립과 노선 개설, 자율 운임으로 교통서비스 편익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주장이었다.

규제 옹호론자들은 무분별한 항공사 설립으로 늘어날 사고와 운임 상승, 영리성 없는 노선 폐지로 인한 소비자 불편을 우려했다. 미국 의회는 1978년 규제완화법(Deregulation Act)을 통과시켰다. 1983년에는 상설 규제기구인 민간항공위원회(CAB)마저 해체했다. 경쟁체제 도입은 성공적이었다. 낮은 운임과 개선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항공사와의 경쟁에서 밀린 유럽도 곧바로 규제를 철폐하면서 항공시장에서 규제완화는 세계적 조류를 형성했다. 애초 우려와는 달리 항공안전은 오히려 높아졌다. 사고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시장 진입과 노선, 운임, 서비스 규제를 없애 경쟁을 유도하면서도 연방항공국(FAA)과 각국 정부가 안전운항을 위한 기술적 규제는 지속적으로 강화한 결과였다.


항공시장은 성장잠재력이 가장 큰 산업에 속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저비용항공사(LCC)가 본격 등장했다. LCC가 세계시장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하면서 경쟁은 한층 격해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지역의 경쟁과 성장세는 가파르다. 앞으로 20년이면 유럽과 미주를 합한 시장 규모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세계 항공시장의 성장동력은 아시아지역으로 이동했다. 현재 LCC시장 1, 2위는 발 빠르게 틈새시장을 파고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항공사다. 그러나 국영항공 4개사를 비롯해 48개의 정기항공과 중소형 항공 등 모두 350여개의 항공사를 보유한 중국이 LCC시장에 뛰어들면 지역시장 판도가 확 바뀔 것이다.

美 항공규제 철폐, 안전은 향상

국내 LCC 성장곡선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지난해 국내 6개 LCC의 국제여객 수송분담률은 30.3%로 전년 대비 7.6%포인트 증가했다. 2011년(11.3%)에 비해 국제여객 수송분담률은 3배가량 높아졌다. 일본 노선이 많은 6개 LCC의 지난해 국내선 수송분담률은 57.4%로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항공의 점유율을 제친 지 오래다. 하지만 외국 항공사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 항공사들은 낮은 운임으로 우리나라 국제노선 여객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안전에 대한 고객 불만이 늘어나는 현실과 외국 항공사의 가격 파괴적인 시장 공세는 업계의 고민이다.

최근 항공사 설립 움직임이 활발하다. 연중 좌석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는 여객 수요와 항공업계가 수년간 향유해온 흑자 행진이 배경이다. 지방을 거점으로 취항을 준비하는 사업자에게는 자본금 150억원과 항공기 3대로 규정한 사업 요건이 낮은 문턱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낙관적인 시장예측이 가져온 환상에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진입이 자유로운 시장일수록 경쟁 과정을 거치면서 승자만이 남는 과점시장으로 바뀌는 것이 경험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규제 철폐 이후 많은 항공사가 생겨났지만 10여년이 지나면서 대형 항공사의 산업 집중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국내에서도 이미 한성항공을 비롯해 세 개의 항공사가 시장 진입 초기에 파산을 경험했다. LCC시장은 갈수록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본격적인 생존 경쟁은 시장을 선점한 항공사들의 응전이 시작되고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가시화된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시장이 커지면서 항공안전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빈번한 운항 사고로 승객의 불안감이 커지자 항공안전과 기내 보안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았다. 예상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그러나 항공안전과 시장 경쟁에 대한 규제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외국 항공사 공세로 경쟁 격화

최근 한 신설 항공사가 제출한 사업면허 신청을 반려한 국토부는 항공안전 미흡 외에 재무능력과 소비자 편익 문제점을 포함시켰다. 항공기(3대 이상)와 자본금(150억원 이상) 요건은 충족했으나 취항 계획 등을 고려할 때 운영 초기 재무적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업의 재무능력은 사업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경영 요건이지 규제 대상은 아니다. 소비자 편익에 관한 판단도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경쟁시장에서 고객이 지불하는 요금만큼 편익을 제공하는 항공사만이 선택을 받는다. 사업 성패를 정부가 미리 판단하고 시장 진입을 막는 것은 과도한 규제다. 생존과 발전을 위해 서비스를 차별화하고 가격으로 경쟁할 때 소비자 편익이 증대되고 업계의 국제 경쟁력은 강화된다.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경쟁, 그리고 안전 확보다. 항공안전의 최대 위협 요인은 무엇인가. 사고 원인은 대부분 인적 요인이다. 국적 항공사의 잦은 운항 장애도 정비와 기내 안전에 대한 점검 미흡이 원인이다. 특히 운항 증가에 따른 업계의 조종사와 정비사 부족은 심각한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국토부는 정비사 자격증 제도를 강화하는 개선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자격 규제 강화로 정비사 공급을 제한하기보다는 국제 기준을 충족하는 정비인력을 양성하는 인증기관을 확대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지금 항공안전을 위협하는 정비 문제는 숙련된 정비사의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 국내 정비인력이 충분하게 확보되기 전까지는 외국인 정비사에 대한 고용조건을 완화하는 게 해법일 것이다.

항공규제 대상·방법 재검토를

전통적인 항공사와 LCC로 구분돼온 세계시장은 지금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두 시장 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항공과 소형 항공시장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항공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17개 항공사가 경쟁하는 대만, 11개 대형사와 LCC 외에도 17개 지역 항공사와 전세항공, 화물항공과 소형 항공사가 경쟁하는 일본의 시장 세분화는 발 빠르다. 안전을 확보하면서 공급력과 경쟁력을 강화할 규제와 탈규제의 구분이 중요한 시기다. 항공 규제의 대상과 방법이 적절한지를 다시 생각할 때다.

허희영 <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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