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한민국 한경의 제언] "한국에서 기업하는 게 기적이란 말 왜 나오겠나"

입력 2017-03-15 19:22   수정 2017-03-16 09:54

(3) 경제 살리고 기업을 뛰게 하는 '재벌 개혁' 하라

'사면초가' 몰린 기업들
재단 출연한 기업들 검찰수사로 5개월 '발목'
대선주자는 법인세 인상 등 기업 옥죄기
노조·지자체도 '감 놔라 배 놔라' 경영 간섭



[ 장창민 기자 ]
누군가 돈을 내라고 하니까 냈다. 대가는 혹독했다. 지난해 말 검찰 조사와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를 거쳐 특별검사 수사까지 받았다. 또다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5개월째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반(半)강제적’으로 출연한 53개 기업 얘기다. 이들 기업은 두 달간 펼쳐질 대선 정국도 맞고 있다.

이번엔 재벌개혁 ‘대상’이 됐다.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법인세 인상론과 기업을 옥죄는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들고나오고 있어서다. 노동조합과 지방자치단체까지 가세해 기업 경영에 ‘감 놔라 배 놔라’는 식의 간섭을 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처한 현실이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한국에선 누굴 믿고 사업해야 하느냐. 해외로 나가라는 얘기냐”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정권의 현금인출기 된 기업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해 말 불거진 ‘최순실 사태’다. 이들 기업은 청와대 요청에 마지못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헌납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기업들은 마치 범죄자인 양 검찰 수사를 받았다. 정경유착을 통해 특혜를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10대 그룹 임원은 “정권에 찍히면 검찰 수사나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돈을 안 내고 버티겠느냐”며 “돈 뜯기고 뺨 맞은 꼴이 됐다”고 말했다.

정권의 관심 사업에 기업들이 돈을 뜯긴 사례는 수두룩하다. 박근혜 정부만 해도 기업들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돈 외에도 청년희망펀드에 880억원, 지능정보기술연구원에 210억원, 한국인터넷광고재단에 200억원, 중소상공인희망재단에 100억원 등을 내놨다. 이명박 정부 때는 2조원대의 미소금융, 7000억원대의 동반성장기금 재원도 기업으로부터 거뒀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권이 노골적으로 정치자금을 걷는 관행은 거의 사라졌지만, 정권 관심 사업에 기업을 동원하는 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권 교체기마다 재벌개혁 구호

돈뿐만이 아니다. 재계는 기업을 옥죄는 법안에 포위되기 직전이다. 이미 기업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발생한 피해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및 민간 자율협력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 차원에서 이뤄지던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을 법제화한 법안 등 일부 경제민주화 법안이 지난달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야당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재계는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외국 투기자본에 기업들의 안방을 내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야당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통과시킬 기세다.

이런 분위기는 대선 정국과 맞물려 재벌개혁이란 구호로 거듭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경제공약 1호로 재벌개혁을 내세웠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재벌을 집중 개혁하고 재벌 범죄에는 무관용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안희정 충남지사(민주당) 역시 순환출자 금지 등을 통해 재벌개혁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민주당)은 아예 ‘재벌 해체론’을 들고 나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보수진영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바른정당) 등도 이 같은 분위기에 동참했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1997년 대선 때 여야 유력 후보였던 이회창, 김대중 후보가 모두 재벌개혁을 외친 뒤 정권교체 시기마다 재벌개혁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 해외로 나가라는 건가”

기업들은 노조와 지자체에도 휘둘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 가동과 분사 문제로 전북 군산시, 울산시, 노조 등이 경영에 개입하면서 곤욕을 치렀다. 신세계는 광주 복합시설 건설을 놓고 지역구 의원과 지자체 단체장이 정반대 목소리를 내 발만 구르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노조와 지자체가 과도하게 간섭하면 앞으로 어느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하려고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각종 규제가 늘고 정치권과 노조, 지자체 압박이 거세지다 보니 기업인들 사이에선 “한국에서 기업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재벌개혁이란 구호 아래 벌어지는 ‘기업 때리기’가 마치 시대적 소명인 듯 받아들여지는 게 답답하다”며 “기업들은 해외로 다 나가라는 얘기로 들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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