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식욕 앞에선 인종도, 종교도 사라진다

입력 2017-03-16 18:35   수정 2017-03-17 06:05

먹는 인간

헨미 요 지음 / 박성미 옮김 / 메멘토 / 364쪽 / 1만6000원



[ 선한결 기자 ] 18세기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은 《미식 예찬》에서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 교양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먹는 법을 안다”고 했다. 소설 《자동기상장치》로 일본 유명 문학상인 아쿠타카와 상을 받은 작가 헨미 요(73)는 “사람도 가끔 짐승과 똑같이 ‘먹이’를 먹는다”고 말한다.

작가가 교도통신 외신부 데스크로 일하던 1992~1994년 세계 15개국을 여행하며 식사를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먹는 인간》에서다. 각국의 향토 음식이나 식문화를 소개하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당시 일본인을 두고 “포식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며 여행을 떠났다. ‘먹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역사·정치·사회적으로 분쟁을 겪었거나 여전히 위험과 갈등이 산재하는 방글라데시, 베트남, 크로아티아, 소말리아, 러시아, 한국 등 15개국을 찾았다. “가끔은 식사가 아니라 먹이를 먹는다는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영역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작가는 그가 만난 사람의 음식에서 그들의 삶을 엿본다. 그중 하나가 ‘갈등의 맛’이다. 러시아에서는 길가에서 첼로 연주를 하며 구걸하는 아이의 가족과 함께 식사한다. 흑빵과 따뜻한 물뿐인 식사 자리에서 이 가족은 “냉장고를 고기로 가득 채워줄 것”이라는 구호 때문에 극우 민족주의자를 지지한다고 고백한다.

가난한 나라에선 생사와 직결된 식사를 체험했다. 방글라데시에는 부자들이 남긴 음식 찌꺼기만 모아 파는 시장이 있다. 음식 신선도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시큼해진 고기 요리엔 누군가 베어 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자는 “음식을 남기는 것이 죄라면 이 사람들이 그 죄를 씻고 있는 셈”이라며 한탄한다.

먹는 행위만 조명하다 보면 인간의 본성을 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분쟁이 한창일 당시 크로아티아의 한 난민 무료급식소를 방문했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터키 출신 사람이 한데 모여 배고픈 표정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시늉을 했다. 종교 단체가 주는 자선 음식을 받아 먹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이 풍경을 보고 “종파든 뭐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식욕은 정직하다. 왠지 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당시 먹었던 음식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할머니는 설탕 덩어리를, 다른 할머니는 단팥 떡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으로 꼽았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이들의 고난이 모두 같아 보여도, 세세하게 다른 자신만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자의 결론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극의 핵심에 조금씩 다가가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이상하게 보여도 이상한 음식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가는 곳마다 ‘먹는 인간’이 있고, 먹는 것을 둘러싸고 알려지지 않은 드라마가 펼쳐진다”고 말한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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