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술만 만들라' 는 한국

입력 2017-03-17 19:20  

세금이 가른 한·일 전통주

한국, 50년간 '종가세'…막걸리 수출, 60% 급감
라벨만 바꿔도 세금 껑충



[ 김보라 기자 ] “50년간 종가세를 고집하는 것은 싸구려 술만 계속 만들라는 얘기죠.”

한 전통술 제조업자의 얘기다. 전통주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국산 막걸리 수출량은 2012년 3만658t에서 지난해 1만3654t으로 5년 새 3분의 1토막이 났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외국산 제품 공세에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금 체계가 국산 술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세법은 알코올도수가 아니라 완제품 출고 가격에 세금을 매기도록 규정하고 있다. ‘종가세’다. 원료인 주정은 물론 술에 들어가는 첨가 재료, 병과 포장재, 마케팅 비용까지 다 포함해 세금을 매긴다. 세율은 막걸리 5%, 약주·과실주·청주 30%, 소주·맥주 75%다. 세율만 약간씩 변했을 뿐 종가세는 1968년 도입된 이후 한 번도 변화가 없었다.

출고 가격에 과세하는 종가세가 품질과 디자인을 바꾸는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남과 다른 양질의 재료를 쓰거나 병 모양만 조금 바꿔도 출고가가 오른다. 세금을 몇 배 더 내야 한다. 모험을 막는 구조가 국산 술을 싸구려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통주가 외국산 술에 비해 역차별받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수입 주류 세법은 단순하다. 수입업자가 신고한 가격에 세금을 부과한다.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6캔에 만원’이라는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과세 기준 때문이다. 수입 업자가 한 번 관세청에 신고한 금액을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실제 얼마에 사 왔는지, 원가가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

맥주 회사들이 좋은 재료를 써서 국내에서 술을 제조하는 것보다 외국 맥주를 잔뜩 들여와 싸게 파는 게 더 많이 남는 구조다. 맥주 수입량은 지난해 1억8155만달러로 5년 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편의점 등에서 수입맥주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세법의 허점을 노려 수입업체들이 공격적으로 마케팅한 결과다.

한국산 전통주는 안동소주 소곡주 경주법주 등 고급 술이 많다. 탄탄한 자본력으로 물량공세를 하는 해외 주류사와 비교해 전통주는 포장, 판촉, 유통 등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산업 개편 등을 통해 소규모 양조업체 등을 육성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이 개편안에 종가세 얘기는 없다. 제주도에 수제 맥주 양조시설을 짓고 있는 문혁기 제주브루어리 대표는 “연간 최대 2000만L 생산을 목표로 양조장을 준비 중인데 라벨 하나만 바꾸려 해도 세금이 올라 못 하는 실정”이라며 “외국 파트너들은 이런 세금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주세를 종량세로 전환하는 데 걸림돌은 두 가지다. 소주 가격이 오르는 것과 세수 감소 가능성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종과 도수에 따라 세액이나 세율을 차등화하면 소주 가격과 세금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1990년 주세 체계를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개편했다. 알코올도수에 따라 13도, 21도, 37도 등으로 구간을 나눠 세금을 달리 매긴다. 증류주도 알코올도수 21도 미만과 21도 이상으로 구분하고 이후 1도씩 더 오르면 세금이 추가로 붙는다. 국산 소주 도수가 20도 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소주 가격 인상을 막으면서도 세금 구조를 개편할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9개국은 종량세를 택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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