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 한국의 근대적 경제성장은 1950년대에 시작됐다

입력 2017-03-19 18:12   수정 2017-03-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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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얼 <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해방 이후 한국 경제는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 많은 사람은 이런 성취가 1961년 군사정변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해 왔다. 새로운 집권 세력은 이승만 정부와는 달리 경제성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고, 적절한 산업·무역 정책을 수행했기 때문에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다고 봤다.

한국 경제의 성장을 정권 교체와 연결하는 역사관은 원래 군사정변 세력이 표방한 ‘혁명사관’이었다. 혁명사관은 큰 반론 없이 지금까지 우리 경제 발전을 설명하는 통설로 받아들여져왔다. 한국 경제성장의 출발은 박정희 정부라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이는 사실과 맞지 않다. 1954~1960년 연평균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5.3%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1950년대를 ‘침체기’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함을 보여준다. 제조업 생산은 1955~1960년 기간에 연평균 13.6% 증가했다. 이는 절대적으로도 높은 수준일 뿐 아니라 1961~1965년(12.3%) 증가율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1950년대 전력 생산량은 연평균 13.1%씩 증가했다.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근대적 경제성장’은 이미 1950년대에 시작됐으며 이 시기가 1960년대에 도래할 고도성장(GDP 증가율 10% 이상)의 기반을 마련한 시기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50년대에도 근대적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 시기에 우리가 큰 규모의 원조를 받았기 때문이다. 원조는 빠른 전후 복구뿐 아니라 경제성장에 필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둘째는 산업, 무역정책이다. 수출입링크제, 보호관세 등 흔히 박정희 정부가 실시했다고 알려져 있는 수출촉진정책 상당수는 이미 1950년대에 도입됐다. 휴전 이후 1950년대 도입된 무역 및 산업정책과 이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제공한 원조가 해방 이후 산업화의 본격적 출발점이었고, 수출 지향적 근대 경제성장의 초석을 갖추는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두 가지 시사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많은 사람은 1950년대가 혼란과 침체의 시기라고 여긴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성장률이 낮아서가 아니라 소득 수준이 낮아서였다.

우리나라는 1950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빠르게 성장을 하던 나라이기도 했다. 전통설(說)은 이러한 측면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1950년대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가로막았다. 둘째, ‘정치적 변화’와 경제성장을 단선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경제성장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져올 수 있다. 군사정변 이후 고도성장이 시작됐다는 것은 상관관계일 뿐, 새로운 정부의 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대한 연구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에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도 앞으로 보다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김두얼 <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이 글은 <경제발전연구>에 실린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성장의 기원, 1953~1965: 전통설과 새로운 해석’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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