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개 중국 기업 '제재 카드' 쥔 미국…"중국, 북핵 해결에 딴짓 말라"

입력 2017-03-20 19:30   수정 2017-03-21 05:31

워싱턴 인사이드

시진핑 만난 틸러슨 미 국무, 북핵 언급 않고 협력 강조
비공식 회의에선 중국 몰아세워

'중국 역할론' 주문하는 대신
미국법 어긴 블랙리스트 기업에 '벌금 폭탄' 등 고강도 압박 예고



[ 박수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괴상한’ 악수법이 화제다. 그는 지난달 10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포토타임에서 19초간 긴 악수를 나눴다. 악수했다기보다는 아베 총리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 손으로 꽉 잡은 뒤 다른 손으로 아베 총리의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

그는 평소에도 악수한 상대의 손을 자신의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밀기를 서너 번 반복하는 독특한 악수법을 쓰고 있다. 협상에 앞서 상대의 기(氣)를 죽이려는 몸에 밴 습관이라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의 ‘밀당’ 악수 외교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다음달 초 열릴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이 어떤 악수를 나눌지 주목하고 있다. 누가 상대편 쪽으로, 얼마나 끌려가는지를 보면 회담 판세를 가늠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밀당(밀고 당기기)’에 나섰다. 중국에 북한 핵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통상 등의 현안에서 밀릴 수 없다는 전략에서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주 한·중·일 순방기간에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 검토’ ‘한·일 핵무장 허용 검토’ 등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하나같이 중국을 자극하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트위터를 통해 “그동안 북한이 미국을 갖고 놀았다. 중국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원사격했다.

하지만 중국에 도착한 틸러슨 장관은 ‘상호 존중’ ‘협력과 우정’ 등을 얘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9일 “틸러슨이 첫 외교무대에서 중국에 외교적 승리를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다른 해석도 나온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과의 공식회의 뒤편에선 ‘거친 몸싸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월터 로만 아시아센터 소장은 “틸러슨이 비공식 회담을 통해 북한 문제를 놓고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 석상에서 중국 지도부의 얼굴을 세워줬을 뿐 실질적인 분위기는 딴판이었을 것이란 해석이다.

◆‘새 대북 접근법’ 주목해야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트럼프 정부가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주창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을 지렛대로 한 북한의 변화를 추구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 북한 문제의 분리 해결을 추진한다. 틸러슨 장관이 이번에 중국 측에 전달한 내용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북핵을 해결하는 동안 중국은 개입하지 말라’는 통보였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와 잇몸 같은 북·중 관계를 떼어놓을 카드로 미국 수출 관련 법과 규정을 어긴 중국 기업 ‘블랙리스트’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트에 올라 있는 기업은 중국 1위 통신장비제조업체 화웨이를 포함해 30여개에 달한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미국 재무·상무·법무부 등은 이들 기업에 대한 제재 준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일 이란거래제재규정(ITSR)과 북한수출관리규정(EAR)을 위반한 혐의로 12억달러(약 1조3000억원) 벌금을 부과받고 휘청거리고 있는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 ZTE는 그중 첫 케이스다.

이 소식통은 “블랙리스트 기업의 벌금액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 장관 “ZTE는 시범케이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12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업무 우선순위를 묻는 말에 ‘법의 엄정한 집행’이라고 강조한 뒤 “ZTE 제재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반덤핑 소송 등에서 패소한 중국 기업 중 세금을 미납한 곳이 많다”며 “징수해야 할 세금이 수십억달러에 달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반덤핑 혐의로 가장 많이 소송을 제기한 상대는 중국이다. 중국을 겨냥한 카드가 여러 개 마련돼 있다는 시그널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중국이 북한의 추후 도발에 어떤 반응을 내놓는지 보면 다음달 미·중 정상회담 분위기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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