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권이 제멋대로 정해버린 52시간 초과 근로 금지법

입력 2017-03-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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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관행, 노동시장 현실과 달라 사회 양극화 초래할 것
중소기업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혜택은 강성노조만
4차 산업시대 낡은 사고, 사적자치에 대한 위헌적 침해



더불어민주당 등 원내 교섭단체 4당이 그제 주당 법정근로 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대폭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개정안은 현행 1주 규정을 5일에서 7일로 바꾸어 휴일개념을 폐지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그토록 논란이 많았던 근로시간 단축 법안을 어떻게든 통과시켜,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라도 청년 실업 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설명이다. 또 산업계의 파장을 고려해 법 적용 시기를 대기업은 2년, 중소기업은 4년간 유예한다는 조건도 붙였다. 그러나 대선정국 와중에 이번 합의는 너무도 급작스럽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요구를 그렇게 묵살해오던 끝에 기습적으로 내놓은 것이 이번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다.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52시간 초과근무를 금지하는 강행규정으로 개정될 예정이어서 노사 양측이 모두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최장의 근로시간을 기록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실제 근로시간은 최근 들어 OECD 국가에서 가장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2001년 2499시간에서 2015년 2113시간으로 15년 동안 386시간이나 줄어들었다. 이는 또 OECD 회원국 평균 감소 속도의 6~7배 빠르기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문제는 노동관행이나 급여체계, 근로자들의 실질소득에 큰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도입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근로시간을 변경하면서 생길 수 있는 허다한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외형상 시간만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이어서 현장 적용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본질적인 문제는 역시 근로시간을 국가에서 강제한다는 점이다. 근로는 인권적 차원의 함의를 갖는 자유권의 본질을 구성하는 권리다. 이런 자유권의 본질을 국가가 근로기준법이라는 일종의 모범규준을 고치는 방법으로 침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위헌적 발상이요 사적 자치를 기본으로 하는 노동법 체계에도 맞지 않는다.

효과도 의심스럽다. 노동 시간을 단축해 고용을 창출했다는 사례보다는 오히려 고용이 감소하거나 제자리였다는 연구가 많다. 2003년 노·사·정 합의로 근로시간을 단축했을 때도 실질적인 고용 효과가 없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일한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추가 고용이 필요할 것이라는 가정에 근본적 오류가 있다. 지금의 노동시장 구조에선 고용이 전혀 혹은 그다지 늘지 않을 수도 있다. 추가 고용을 하려면 임금을 내리거나 추가고용에 따른 임금비용을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노조도 변경된 조건만큼 임금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강성노조가 존재하는 대기업 공기업과 중소기업 임금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추가고용이 임금비용만 높이는 것도 아니다. 추가고용은 작업장 시설과 인력관리비용 등도 함께 높인다. 임금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이 발생하면서 사회 전체의 총량 고용은 충격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 노동시장 내부의 양극화 구조는 더욱 악화될 것이 예상된다.

기업들은 추가고용보다는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는 한국의 급격한 고령화가 산업용 로봇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국가로 만들었다고 분석할 정도다. OECD 역시 임금을 삭감하지 않는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비용을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유발시켜 고용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고 분석한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국회는 임금비용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근로시간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도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산업화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업종과 직종이 다양해졌고 이는 근로시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근로시간 제도는 제조업 생산공정에 적합한 규제 중심의 사고다. 야근을 하더라도 그 직업에 만족하는 직원이 많은 작업이 있다.

근로시간에 대한 개념의 차이도 문제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근로시간은 작업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출퇴근 시간으로 간주해온 것이 현실이다. 장시간 근로라는 것도 알고보면 전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임금이나 시간 등 근로조건을 정부나 정치가 개입해 결정하거나 노조가 단체 결정권을 갖는 것도 낡은 패러다임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고 이제는 4차 산업이라고 말하는 시대를 맞았다. 이런 환경이라면 고용 상황은 너무 빨리 변한다.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일자리를 추가로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도 단순무식한 초급 산수의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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