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간 29분…전직 대통령 중 최장 검찰조사
검찰 "정호성 비서관 통해 청와대 문건 유출했나요"
박 전 대통령 "일부 표현 등 최순실 의견 들어보라 했습니다"
검찰 "이재용 부회장에게 정유라 지원 요구했나요"
박 전 대통령 "올림픽 승마종목 키워 달란 협조 요청이었죠"
[ 고윤상 기자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1001호 조사실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곳과 바로 옆 1002호에서 21시간29분을 보냈다. 21일 오전 9시15분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나와 22일 오전 7시6분께 귀가할 때까지는 21시간51분이 걸렸다. 조사는 21일 오후 11시40분쯤 끝났지만 이후 신문조서를 검토하느라 7시간10분을 더 보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16시간20분), 노무현 전 대통령(13시간) 조사 때보다도 훨씬 긴 하룻밤이었다. 본지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조사 장면을 재구성했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의혹을 수사한 한웅재 형사8부 부장검사가 이원석 특수1부 부장검사에 앞서 먼저 신문을 했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옆에서 소소한 심부름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해 최씨에게 연설문과 정부 인사, 해외 순방 관련 문건을 보낸 사실이 있습니까.
“국민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연설문을 작성하고자 일부 표현 등에 대해 최씨로부터 의견을 들어보라고 지시한 사실은 있습니다. 하지만 문서 자체를 보내라고 지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부 정책이나 인사 관련 자료 등을 보여주거나 보내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한 부장검사는 이어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경위와 대가성 여부를 추궁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받는 13개 혐의 가운데 뇌물죄와 제3자 뇌물수수죄가 가장 중대하다. 뇌물죄와 관련된 사건은 이 부장검사가 수사했지만 먼저 들어온 한 부장검사가 11시간가량 조사를 이어가면서 퍼즐을 맞춰갔다.
▷기업인들과 독대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요구하셨습니까.
“기업들이 재단 설립을 통해 문화·체육 관련 공익사업에 나선다는 얘기를 듣고 정부 차원에서 도와줄 부분이 있으면 적극 도와주라고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지시했을 뿐입니다. 기업들에 재단을 적극 지원해 달라거나 출연해 달라고 직접 요구한 사실은 없습니다.”
▷최씨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자료를 받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한 사실이 있습니까.
“일부 임원 명단을 정 전 비서관에게서 받아 설립 지원에 참고하라며 안 전 수석에게 건네준 적은 있지만 최씨와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사면하는 대가로 재단 출연금을 요구했습니까.
“재단 출연과는 무관합니다.”
▷최씨의 지인 회사인 KD코퍼레이션에 특혜를 주라고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까.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기술이 좋은 중소기업이 있는데 외국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민원을 전달받고, 평소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도와줄 게 있는지 안 전 수석에게 살펴보라고 했을 뿐입니다. 최씨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한 부장 검사가 오후 8시40분께 약 11시간에 걸친 조사를 끝내자 5분 정도 휴식한 뒤 이 부장검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최씨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삼성이 최씨 등에게 특혜를 주도록 요구했습니까.
“승계작업을 도와주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적도 없고, 최씨 등에게 특혜를 주려 한 적도 없습니다.”
▷이 부회장과의 단독 면담에서 정씨에 대한 승마 지원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승마 지원은 올림픽에서 특정 종목이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기 위한 차원에서 협조 요청을 한 것이지, 특정 인물의 개인적 이익을 챙겨주려 한 게 아닙니다.”
▷최씨 조카(장시호)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후원하도록 하라고 요구했습니까.
“스포츠 분야를 육성하려는 국정 과제의 하나로 협조를 요청한 것입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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