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비밀은 극히 일부인 데다 다 가린 채로 받았다. 와서 봐라. 다 보여주겠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23일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경제신문 23일자 A29면에 쓴 ‘삼성전자 반도체 영업비밀 공개 파문’ 기사 때문이다.
기사는 강 의원이 행정부와 사법부가 ‘삼성전자 영업 비밀이 포함됐다’며 비공개키로 결정한 정부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종합진단보고서’를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고용노동부가 만든 820여쪽 분량의 이 보고서엔 삼성 기흥·화성 공장의 공정 흐름도, 장비 종류, 사양 등 각종 기밀 정보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강 의원 측은 공개한 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라정 보좌관은 “정부가 국회에 낸 자료는 공개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해당 보고서엔 영업 비밀이 거의 없고 민감한 건 다 가린 채로 받아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고용부와 삼성전자 측 말은 다르다. 강 의원 측이 작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요구해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부분을 가리고 제출했더니 심하게 질책해 장비 배치 등 1급 비밀이 포함된 몇 쪽만 빼고 다 줬다는 것이다. 또 유출이 우려돼 ‘영업 비밀이 포함돼 있어 공개되면 제3자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으니 자료 관리에 유의해주십시오’란 문구를 붙여 건넸다는 게 고용부 설명이다. 유출을 걱정하는 건 정부와 삼성뿐이 아니다. 경기 수원지법 행정2단독 김강대 판사는 지난 15일 “삼성전자의 경쟁력과 영업상 이익을 상당히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진단 총평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를 비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판결 직후 강 의원은 이를 무시하고 공개했다.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국회가 만든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4조는 ‘(1)감사·조사를 할 때 그 대상 기관의 기능과 활동이 현저히 저해되거나 기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의원 및 사무보조자는 감사·조사를 통해 알게 된 비밀을 정당한 사유 없이 누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원이 법을 무시하면 누가 법을 지킬 것인가.
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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