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세계바둑대회에서 인간과 승부
'알파고' 이어 일본 '딥젠고' 바둑계 석권 태세
■ 기억해 주세요^^
작년 이세돌 9단과 대결해 화제를 모은 ‘알파고’의 실력에 ‘딥젠고’가 도전장을 냈다. 딥젠고와 알파고의 대결은 아니지만 일본의 인공지능 기술수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인공지능이 바둑대회에 출전했다. 3월 21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월드바둑 챔피언십’이다. 인공지능과 특정 기사가 1대1로 붙어 승패를 다투는 방식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다른 참가자들과 동일한 자격으로 출전하는 방식이다. 한국· 중국·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바둑기사 세 명과 일본판 알파고인 ‘딥젠고’ 등 네 ‘명’의 기사가 풀리그로 격돌했다. 한국에서는 랭킹 1위 박정환 9단이 출전했다.
딥젠고는 일본의 바둑 AI
전문가들은 딥젠고는 알파고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실제 딥젠고는 간신히 꼴찌를 면했다. 대회 개막 전, 프로 기사들과의 연습 대국에서 거둔 승률도 압도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 딥젠고가 인간계 최고수의 실력을 넘어서리라는 점에는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한다. 계산에 관한 한, 인간의 뇌는 기계적 연산을 넘어설 수 없는 까닭이다. 바둑을 전략게임으로 보지만, 바둑의 속성은 계산이다. 계산 방식이 독특하고 복잡하고 정교하기는 하지만.
바둑의 이론과 격언은 귀와 변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중에서도 귀의 중요성이 변에 비해 우위를 점했다. 귀는 중앙과 변에 비해 영역이 좁다. 좁은 지역이라 그만큼 경우의 수와 변수가 적고, 상대적으로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다.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아는’ 영역인 것이다. 단련에 의해 인간의 뇌가 거의 모든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는 곳이다.
상대방보다 경우의 수를 많이 알고, 확실한 이익을 챙기면 승리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귀와 변에 비해 중앙은 넓다. 넓은 지역을 차지하면 이기는 것이 바둑의 규칙인데 이 영역에서의 전법은 거의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알파고는 탁월한 계산력을 바탕으로 중앙을 중시하는 수를 선보이며 인간을 물리쳤다. 귀의 파악을 거의 끝내고 변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해가던 인간의 바둑 이론을 단숨에 건너 뛴 것이다.
바둑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벌인 5번기 제1국에서 놓은 돌들을 두고 전 세계 바둑기사들이 ‘인간이라면 저렇게 두지 않을 것’, ‘의문의 한 수’,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작전’이라고 해설한 이유다. 몰랐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2연승을 거둔 3국 이후 해설자들의 멘트도 바뀌었다. ‘저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알파고가 이미 계산을 끝냈다는 뜻일까요’, ‘저 수를 둔 최종 결론이 어떨지가 너무나 궁금하네요,’ ‘지금 귀에다 두었다면 20집 이상 이익인데, 그 수를 포기하고 중앙에 두었다는 건 이익이 보다 더 크다는 뜻일까요?’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인간 중에도 ‘중앙’을 중시한 기사가 없던 것은 아니다.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9단이다. 그는 귀와 변을 순순히 내주고 중앙으로 나아갔다. 눈 앞의 현금을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미지의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바둑은 ‘우주류(宇宙流)’로 불린다. 현실에 연연하지 않는 이상주의자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우주류는 왜 현대바둑의 주류가 되지 못한 것일까.
인간이 계산하지 못하는 ‘중앙’
문제는, 중앙을 중요시한 기사 중에 그만이 거의 유일하게 성적을 냈다는 점이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탁월해도 실전에서 업적을 내지 못하면 현실은 그 아이디어를 채택하지 않는다. 팬들이 다케미야의 바둑에 열광한 것은 그의 철학자같은 기풍에 반해서였지 그가 최강의 기사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일류였지만 절대강자는 아니었다. 다케미야가 귀와 변을 중시했다면, 승률이 훨씬 더 높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다케미야의 계산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복잡함을 정밀하게 읽어낸 것이 인공지능이다. 바둑판의 중앙은 이제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이제 바둑대회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참가자가 외부와의 통신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될 터이다. 체스대회는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이미 세계 최강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위가 얼마나 합리적이었는지를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평가하는 시대. 아직은 아주 작은 제한된 영역에서지만, 그런 시대는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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