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최대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합의가 무산됐다. 5대 노동개혁 입법안(파견법·기간제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 중 유일하게 논의를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안 하는 게 낫다는 냉정한 평가가 쏟아졌다. 하루라도 빨리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노동경제 전문가들도 “근로시간 단축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졸속으로 처리하느니 차라리 다음 정권으로 미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9·15 노·사·정(노동자·사용자·정부) 대타협’을 기반으로 낡은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려던 논의는 1년6개월간 헛바퀴만 돌았다. ‘노동악법’으로 찍힌 노동개혁 입법안은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근로기준법도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다는 원칙적인 합의만 한때 있었을 뿐 특별연장근로 한시 허용, 단계적 확대 등을 담은 노·사·정 대타협은 무시했다.
노동개혁 법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근로자 권익을 위한 것도 많다. 장시간 근로를 없애는 근로기준법이 대표적이다. 산재보험법은 자가용 출퇴근 시에 발생한 사고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이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법안이다. 고용보험법은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기존 90~240일에서 120~270일로 확대하고, 지급액도 평균임금의 60%로 늘리는 게 주요 내용이다.
각 정당이 이해득실을 챙기는 사이 민생법안 논의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청년고용촉진법, 일학습병행법 등 60여개에 이른다. 청년고용촉진법은 공공기관 청년고용 의무비율을 3%에서 5%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학습병행법은 근로자에게 학습권을 보장해주는 법이다.
이제 노동개혁의 과제는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정치권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라는 낙인이 찍힌 노동개혁이 새 출발을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우려가 크다. 정치적 갈등과 셈법을 제외하고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심은지 경제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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