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 지분율 20% 넘어도 규제"
규제 기준 모호해 공무원 재량권 개입 여지
25개 상장사 긴장…지분매각땐 경영권 불안
[ 황정수 기자 ]
작년까지만 해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 일가 사익 편취(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주장에 ‘신중론’으로 맞섰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규제 적용 대상 상장사 요건을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낮춰야 한다”고 압박했지만 공정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공정위 칼날이 무뎌졌다”는 식의 비판에도 공정위 고위급들은 “규제 강화는 시기상조”라며 의원들을 설득하고 달랬다.
이런 상황에서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이 지난 27일 갑자기 ‘규제 대상 확대 방침’을 밝히자 재계는 초비상이다. 무엇보다 규제 잣대가 고무줄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 의지에 따라 계열사 간 대부분의 거래가 규제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논란의 소지를 없애려면 기업 총수로선 지분율을 20% 이하로 낮추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일감 몰아주기의 효율성을 무시하고 ‘규제 일변도’로 대기업을 옥죄는 건 문제가 있다며 공정위와 정치권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 25곳 ‘초긴장’
28일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적용 대상 기업은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는 20% 이상)다. 이들 기업이 다른 계열사로부터 일감 몰아주기 등 내부 거래를 통해 부당이익을 제공받으면 공정위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총수 등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만약 상장사 지분율 요건이 ‘총수 일가 지분율 20% 이상’으로 확대되면 18개 기업집단 소속 25개 상장사가 새로운 규제 대상이 된다. 삼성생명(총수 일가 지분율 20.82%), 이노션(29.99%), 글로비스(29.99%), GS건설(28.26%), 신세계인터내셔날(22.22%), 태광산업(26.27%), 카카오(21.18%) 등이 대표적이다.
◆규제 요건 “모호하다”
이들 기업은 공정위의 ‘현미경 감시’를 받는다. 내부 거래가 아예 금지되는 건 아니지만 요건이 엄격하다. 만약 규제 대상 기업이 △연간 거래액이 200억원 미만이면서 거래 상대방 매출의 12% 미만 △연간 거래액이 200억원 미만이면서 거래가격과 정상가격의 격차가 7% 미만 △효율성 긴급성 보안성이 인정될 경우 등의 요건에서 벗어나는 계열사 간 거래를 하면 공정위 조사를 받는다. 현재 25개 기업 중엔 경영상의 필요나 효율성에 따라 연 200억원 이상의 내부 거래를 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갑자기 거래 규모를 줄이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요건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시장의 ‘정상가격’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질 수 있다. 효율성 긴급성 보안성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공정위 조사 담당 공무원의 재량권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지분매각 시 경영 흔들릴 수도
이에 따라 기업들은 총수 일가 지분을 20% 밑으로 낮춰 규제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글로비스는 현재 29.99%인 총수 일가 지분율을 20% 미만으로 떨어뜨리려면 5457억원어치(28일 종가 기준) 주식 371만2500주를 팔아야 한다.
기업들엔 경영이 흔들릴 수 있을 정도의 부담이다. 지분을 계열사에 넘겼다간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돼 뜻하지 않은 규제를 받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나 정부가 일감 몰아주기의 효율성을 외면하고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지적했다. 경영상의 필요나 효율성 때문에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하는 사례가 대다수인데, ‘재벌 개혁’ 포퓰리즘에 빠져 ‘규제 일변도’ 정책을 꺼내들고 있다는 것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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