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철거로 성곽 드러나
축성 당시 공사실명제 뜻하는 각자성석엔 '의령시면' 새겨져
고 이병철 회장의 고향 인연
[ 강영연 기자 ]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 뒤인 1396년 성곽을 쌓았다. 18.6㎞의 한양성곽이다. 그러나 흙으로 쌓은 성은 곳곳이 무너져 내렸다. 세종은 이를 복원했다. 이번에는 돌로 쌓았다. 공사는 전국의 각 군현에 맡겼다. 부실이 생기면 보수까지 책임지도록 했다. 요즘 말로 하면 공사실명제였다. 실명제의 힘은 셌다. 성은 튼튼해졌다.
임진왜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이 훼손됐지만 여전히 서울 곳곳에는 성곽길이 남아 있다. 이 중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 장충동 인근 다산성곽길이다. 이 길이 서울의 관광명소로 개발된다. 서울 중구청과 호텔신라가 손잡고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다.
◆탁본 뜰 수 있는 체험장도 마련
중구청은 몇 년 전부터 이 길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척은 빠르지 않았다. 지난해 3월 호텔신라가 전통호텔 건립 승인을 받은 뒤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전통호텔과 맞닿아 있는 다산성곽길을 연결해 개발하는 방안이었다. 호텔신라는 성곽 입구에 들어서 있는 건물을 사들였다. 이곳을 성곽의 진입로로 만들고 주차장, 잔디공원도 조성키로 했다. 건물들을 부수자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성곽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수확도 얻었다.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는 성곽돌이다. 공사의 책임을 맡은 군현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공사실명제 표시였다. 세종이 32만명을 동원해 지은 흔적이다. 경상도 지역인 예천, 울산, 성주 등이 적혀 있는 각자성석이 발견됐다. 호텔신라는 이 가운데 ‘의령시면(宜寧始面)’이 새겨진 돌을 찾아냈다. 경남 의령은 삼성그룹을 창업한 고(故) 이병철 회장의 고향이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이병철 회장의 조상들이 올라와 쌓은 다산성곽길 아래에 있는 신라호텔을 이 회장 후손들이 운영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호텔신라는 이런 역사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의령시면 각자성석 주변에 모형 각자성석을 만들어 전시하기로 했다. 탐방객들이 탁본을 뜰 수 있는 체험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지자체와 공동축제도 열어
호텔신라는 다산성곽길을 재정비하면서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오는 5월 서울시 중구청·다산동 주민과 함께 ‘제4회 다산성곽길 예술마당 축제’를 공동 개최한다. 공연, 전시, 전통놀이, 각자성석 바로알기 탁본 등 12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축제에 맞춰 ‘성곽길 웨딩연’도 준비 중이다. 중구청에서 선발한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신라호텔이 전통 혼례를 재해석해 구성한 야외 결혼식을 연다. 다산성곽길 예술마당 축제가 열리는 봄과 가을 한 쌍씩 선발할 계획이다. 참여를 원하는 예비부부는 중구청에 신청하면 된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관광 명소가 되도록 지방자치단체와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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