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 혐의 치열한 법리공방
점심식사·휴식 위해 두차례 휴정
이재용 7시간30분 뛰어넘어
삼성동 자택 앞 아수라장
안전펜스 무너지고 도로에 눕고
법원까지 6㎞ 이동에 11분 걸려
[ 김병일/구은서/성수영 기자 ]
“아이고, 우리 대통령님.” “불쌍해서 어떡하나.”
30일 오전 10시9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에쿠스 리무진에 올라타자 서울 삼성동 자택 앞은 크게 술렁였다. 200여명의 지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무효” “영장 기각”을 외쳤다. 일부 지지자들이 “대통령님 가지 마세요”라며 도로에 눕거나 박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을 향해 뛰어들어 경찰이 세운 철제 안전 펜스가 무너지기도 했다. 취재진 폭행이 잇따랐고 체포된 사람도 있었다. 밤새워 자택 앞을 지켰다는 한 여성 지지자는 오열하다가 탈진해 응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다. 지지자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친박계 의원들 삼성동 자택 집결
‘기약없는 길’을 떠나는 박 전 대통령을 배웅하기 위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삼성동 자택을 찾았다. 최경환, 유기준, 조원진, 이우현, 김태흠, 박대출, 이완영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집에 오지 말라”는 박 전 대통령 측의 부탁을 받았지만 각자 자발적으로 자택을 찾았다. 최 의원은 “이런 날 가서 뵙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닌가”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의원들에게 “여러 가지로 바쁜데 다들 오셨느냐. 나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이 “힘내시라” “이겨내시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은 “고맙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택을 떠나자 박 의원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구속 필요성 놓고 장시간 설전
박 전 대통령이 탄 리무진은 경호차량과 경찰 사이드카의 호위 속에 봉은사로, 반포대로를 지나 오전 10시2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에 도착했다. 법원까지 약 6㎞를 이동하는 데 11분이 걸렸다. 차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은 평상시처럼 올림머리와 감색 정장, 구두 차림이었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50여 걸음 거리에 있는 법원 청사로 들어선 뒤 취재진이 미리 준비한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곧장 방향을 틀어 4번 출입구 앞에 설치된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 없이 법정으로 향했다. 검색대를 통과한 박 전 대통령은 경호원에게 “어디…”라고 물었다. 법원 청사에 도착해 남긴 유일한 말이었다. 오른편에는 엘리베이터가, 왼편엔 계단이 있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물은 것이다. 경호원이 손짓으로 왼편을 가리키자 박 전 대통령은 법정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오전 10시30분. 박 전 대통령이 321호 법정에 들어섰다. 지난 10일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지 20일 만이었다. 강부영 영장전담판사(43·사법연수원 32기) 심리로 열린 심사에서 박 전 대통령 측과 검찰은 구속 필요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박 전 대통령은 피의자석에 앉아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구속의 부당성을 직접 호소했다.
◆한웅재·이원석 vs 유영하·채명성 격돌
검찰에서는 서울중앙지검의 한웅재 형사8부 부장검사(47·28기)와 이원석 특수1부 부장검사(48·27기) 등 6명의 검사를 ‘창’으로 내세웠다. 이에 맞서 박 전 대통령 측은 유영하(55·24기)·채명성(39·36기) 변호사 2명을 ‘방패’로 투입했다. 두 부장검사는 검찰 특별수사본부 소속으로 지난 21일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다.
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선임계를 낸 변호사 9명 중 2명만 나왔다. 유 변호사는 검찰 특수본 1기 수사 때부터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채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 중 한 명이었다.
◆김밥 도시락으로 변호사들과 점심
오전 심사는 2시간36분 만인 오후 1시6분께 끝났다.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들은 321호 법정 옆 대기실로 이동해 경호인이 가져온 김밥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법정 안에서는 식사할 수 없다”며 “점심 제공과 관련해 특별히 계획했던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점심 도시락을 반도 먹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10시30분 시작된 심사는 오후 7시11분까지 8시간41분간 진행됐다. 1997년 영장심사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장 기록이다. 지난달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이 세운 7시간30분 기록을 넘어섰다. 강 판사는 심문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두 차례 휴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구속된 이 부회장 때도 영장심사 중간에 한 차례 20분간 휴정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물론 변호인과 특검 관계자 모두 점심도 거르고 공방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서울중앙지검 10층 임시유치시설에서 대기했다.
김병일/구은서/성수영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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