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안진회계법인, 상장사 감사계약 해지 요청 '거절'

입력 2017-03-31 15:12  

[ 김은지 기자 ]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묵인·방조한 혐의로 물의를 빚은 안진회계법인이 계약이 남아있는 상장사들의 감사계약 해지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안진회계법인은 감사계약 해지를 요청한 계약 1~2년차 상장사에 감사인 해임에 필요한 의견진술서를 이달 내 써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감사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는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관련 절차를 올 3월까지 완료해야 한다. 외감법에 따라 감사인 해임은 사업연도 종료 이후 3개월 안에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법인이 감사인을 해임하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구성한 감사인선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때 해임 여부 결정에 필요한 것이 대상 감사인의 의견진술서다.

안진 측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은 감사인에게 10일 이상의 기간을 정해 의견 진술 기회를 준다"며 "법령상 명시적으로 요구되는 10일 이상의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감사계약을 종료하는 것은 법 규정에 위반된다"고 상장사들에 통보했다.

상장사들은 안진과의 감사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데드라인인 31일까지 의견진술서를 요청했지만, 안진은 의견진술서를 이날까지 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상장사들이 계약해지를 요청한 지 10일 이상이 지나지 않아서다.

외감법에 의하면 회사가 감사인을 교체 또는 해임할 시, 감사인에게 10일 이상의 의견 진술 기회를 줘야한다. 이에 따라 계약해지를 원한 상장사들은 올해까지 안진을 감사인으로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안진이 업계 2위 기업이지만 파산 우려가 존재하고, 앞으로의 신뢰 회복도 미지수"라며 "결국 올해 신뢰가 없는 감사인을 쓰게 됐고, 계약 해지를 인지하고 있는 안진이 제대로 감사를 할 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 "의견진술서 써주겠다더니…안진 갑자기 태도 바꿔"

안진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도 논란이다. 감사인 교체를 요구한 한 상장사는 이에 응했던 안진 측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고 전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의 제재조치 발표 후 안진이 기간과 관계 없이 의견진술서를 써주겠다고 했으나, 감사인선임위원회를 앞두고 돌연 말을 바꿨다"며 "계약 1~2년차 상장사들의 회계법인 교체 권리가 안진에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감사인인 안진에게 상장사가 10일 이상의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의무다. 하지만 안진이 이 기간을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10일 내에도 의견진술을 할 수 있다.

금융당국에는 새로운 회계법인을 선임하려했던 상장사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전날 감사제도 운영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감독원은 관련 법령을 안내하는 질의응답지를 상장사에 배포했다. 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도 기업들의 문의에 관련 법령을 안내했다.

◆ 금융당국 늦장 고시로 올해 감사 해임 '무산'

금융위원회는 지난 24일 안진회계법인에 대한 감리결과 조치를 발표했다. 안진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조직적으로 묵인·방조·지시했다고 판단, 12개월간 신규 감사계약을 금지했다.

또 계약 3년을 다 채운 상장사는 감사인을 필히 변경하고,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1~2년차 상장사에 대해서는 안진이 계속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감사인 해임 사유인 '소속 회계사 등록취소'가 발생했기에 감사인 변경을 희망할 경우, 3월 말까지 감사인선임위원회 승인을 받아 교체하도록 안내했다.

문제는 금융위가 제재조치를 발표한 24일에 상장사들이 의견진술서를 요청했더라도, '10일 이상' 조항에 따라 의견진술서는 빨라야 4월3일에 받을 수 있다. 3월을 넘겼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정말로 상장사들을 생각한 안내였다면, '회계사 등록취소'가 확정된 이달 8일에 고지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8일부터 감사인 교체를 준비했다면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

업계 관계자는 "8일에 회계사 등록취소가 확정됐다고 하지만 상장사들은 금융당국이나 안진으로부터 이를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며 "금융위가 감리결과 조치를 발표한 24일에야 조치 내용을 담은 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의 공문을 받았고, 상장사들이 감사인 변경을 위해 움직였다"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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