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병원들이 IBM의 인공지능(AI) 왓슨 포 온콜로지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인천 길병원에서 첫 진료를 시작한 뒤 4개월 만에 5개 병원에서 왓슨을 도입했다. 부산대병원, 건양대병원이 왓슨을 활용한 진료를 시작했고 계명대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이달 진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왓슨을 도입한 병원이 인도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왓슨 포 온콜로지는 AI를 활용해 암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제시하는 기기다. AI는 사람이 찾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방대한 양의 의학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 왓슨을 도입하는 의료기관이 많아지면 국내 암 환자는 최신 기술을 활용한 진료를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지나치게 빠른 왓슨 도입 속도를 우려하고 있다. 의사의 일자리를 AI에 뺏길 수 있다는 밥그릇 싸움 때문이 아니다. 열악한 한국 의료 현실을 말해주고 있어서다. 왓슨을 도입하거나 도입 예정인 의료기관은 대부분 지방 대학병원이다. 암 등 중증 질환자가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쏠리면서 지역 의료기관을 찾는 암 환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기관은 정작 존폐 기로에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보니 지역 환자를 붙잡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고가의 왓슨을 도입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에서 왓슨의 의학적 정확도와 효과 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왓슨은 의료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왓슨을 활용해 진료하더라도 의료기관은 환자에게서 추가 진료비를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여러 과 의사가 모여 진료하는 다학제 진료를 해 추가 진료비를 받고 있다. 다학제 진료가 왓슨 도입으로 인한 비용 손실을 보전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왓슨을 도입하는 의료기관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4일에는 공공병원인 중앙보훈병원도 왓슨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공공병원까지 암 환자 유치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왓슨 도입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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