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누구나 혐오 표현을 혐오할 권리가 있다"

입력 2017-04-06 18:24  

혐오 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제러미 월드론 지음 / 홍성수·이소영 옮김 / 이후 / 344쪽 / 1만8000원



[ 김희경 기자 ] “무슬림, 그들에게 말하지 말고 그들을 들이지 말라.”

미국 뉴저지에 살던 한 가족은 함께 길을 걷다가 이런 문구의 표지판을 발견했다. 딸아이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이게 무슨 말이야?” 아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포함한 가족 전체가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서나 쉽게 혐오 표현을 보고 들을 수 있는 ‘혐오의 시대’다. 미국에선 반(反) 이민정책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이후 인종 차별이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영국에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후 인종 혐오 범죄가 41% 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 호남, 민주화운동에 대한 혐오부터 외국인, 이주자들을 둘러싼 차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혐오 표현을 막아야 할까, 아니면 표현의 자유라며 인정해야 할까.

《혐오 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는 혐오 표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구체적인 피해 사례, 해결 방안 등을 살펴본다. 저자는 뉴욕대 로스쿨에서 법과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제러미 월드론 교수다.

악랄한 욕설이 주는 고통은 여러 가지다. 기분 나빠지는 정도로 그칠 수 있는가 하면, 나를 포함한 내 가족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다. 나아가 내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공격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혐오 표현을 하는 자들의 입을 무작정 막아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독이 있는 꽃이라도 만발하게 내버려 둘 것인가. 모두에겐 혐오 발언을 증오할 권리가 있다.”

혐오 표현은 공공의 선(善)을 파괴한다. 공공선은 출신부터 성별, 개성 등이 모두 다른 각각의 개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조건’이다. 공존을 위해선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보장, 무조건 배제당하거나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혐오 표현은 이 확신을 무너뜨린다. “혐오 표현은 사회 환경을 위협한다. 말과 말이 전해져 축적되면 결국 선한 마음을 지닌 구성원들조차 공공선을 지킬 수 없다.”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법이 불필요한 환경이 조성됐다면 인위적으로 법을 만들 필요는 없다. 법에 따른 처벌, 금지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일부 유럽 국가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지만 샅샅이 단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소수자들에게 ‘이곳을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란 공식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공존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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