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 '예산 부족'] '최순실 사태'로 후원금 끊긴 평창올림픽…결국 공기업 압박

입력 2017-04-06 19:02   수정 2017-04-0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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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위, 공기업서 2000억 걷기로
대기업들 '뇌물죄' 논란으로 후원 중단…공기업 "우리 돈이 쌈짓돈이냐" 볼멘소리



[ 이태훈 / 이관우 / 정지은 기자 ]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기업 후원금 모금 미달로 운영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대기업이 중심이 돼 자발적으로 내던 후원금이 작년 말 ‘최순실 사태’ 이후 ‘뇌물죄’ 논란이 확산되면서 뚝 끊겼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조직위와 정부는 공기업과 금융 유관단체들에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조직위는 예산 부족액 3000억원 가운데 2000억원을 공기업 후원으로 채우기로 했고, 정부가 나서 공기업 압박에 들어갔다. 난데없이 공기업이 유탄을 맞게 생긴 것이다. 일각에선 ‘공기업 돈은 눈먼 돈이냐’는 비판도 나온다.

◆대기업 후원 끊긴 평창

조직위는 이번 올림픽을 치르는 데 필요한 총 예산을 2조8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지금까지 확보한 예산은 2조5000억원 정도다. 내년 2월9일 개막까지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3000억원 정도가 모자란다. 이대로라면 동계올림픽을 정상적으로 치르기 힘들지 모른다는 게 조직위 걱정이다.

이희범 조직위원장이 정부에 ‘SOS’를 쳤다. 이 위원장은 지난 5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작년 최순실 사태로 기업 후원 차질이 크다”며 “공공기관 후원을 2000억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기재부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미달액 3분의 2를 공기업에서 받겠다는 것이다. 유 부총리는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공기업의 후원을) 논의해보겠다”고 답했다.

평창올림픽 기업 후원은 2015년 2월 시작됐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구본무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주요 기업인 21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평창올림픽 스폰서십 지원에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한다”고 말한 뒤 대기업들은 8000억원 이상 후원금을 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후원한 게 문제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기업들이 자금 집행에 대한 내부 회계지침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등 몸사리기에 나선 것이다. 장시호 씨 등 최순실 일가가 평창올림픽을 둘러싼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기업들의 후원을 꺼리게 했다.


◆유탄 맞은 공기업

후원이 중단된 여파는 고스란히 공기업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전력 강원랜드 등 대표 공기업들이 타깃이 됐다. 조직위는 한전이 후원에 난색을 표하자 ‘현물 후원’까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평창 현지에서 사용되는 전기료를 감면해주는 방식으로 지원을 부탁한 것이다. 조직위는 이번 대회에 1000억원 정도 전기료가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월 미국 뉴욕 방문에서도 조환익 한전 사장을 만나 “민간 기업에 손벌리기 어려운 분위기니 한전이 도와달라”며 후원을 요청했지만 조 사장이 완곡히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도 대표 공기업인 강원랜드도 조직위의 후원 요청에 고민이 많다. 강원랜드는 이미 지난해 50억원을 후원금으로 냈다. 올해에는 조직위가 이의 10배인 500억원을 후원하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기업 돈은 쌈짓돈이냐”

공기업들은 정부와 조직위가 후원금 납부를 압박하고 나서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공기업의 이익금을 쌈짓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예산을 사용하기 싫어 공기업 돈을 끌어다 쓴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재부는 지난해 내수를 살린다며 에너지소비 효율 1등급 가전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구매액의 10%를 환급해줬다. 재원은 한전의 이익금 1400억원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부 예산으로 환급해주자고 했지만 기재부가 반대해 한전 돈으로 재원을 마련했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때도 마찬가지다. 산업부는 전기료를 평균 11% 깎아주는 누진제 완화 방안을 지난해 말 발표했다. 요금을 낮춰줌으로써 발생하는 비용부담(연 1조원가량)은 모두 한전에 떠안겼다.

이태훈/이관우/정지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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