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 말하면 안된다' 생각에 던진 한마디
밀회설·굿판·인신공양 등 괴담으로 번져
'카더라' 판치며 권위는 땅으로 떨어져
청와대 참모들 '정윤회 문건' 대책회의 때도
안봉근 "설치지 마라" 한마디에 조사 중단
루머 퍼져나가도 '무대응'…결국 파국 초래
괴담과 악의적 루머에 시달리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유독 심했다. 정권 초반부터 대통령을 둘러싼 온갖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괴담 수준으로 자가발전해 집권 내내 집요하게 괴롭혔다. 괴담은 여론을 자극하면서 정권을 궁지로 몰아갔다.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간 본질은 아니지만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중대한 계기가 됐다는 게 국정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인사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문제는 괴담에 대응하는 박근혜 정부 태도다. 괴담과 악의적 루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금세 힘을 잃게 마련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시종일관 회피와 부인으로만 일관했다. 참모들의 소극적인 자세와 핵심 측근들의 언로 차단도 사태를 악화시킨 주원인이다. 박근혜 정부 스스로 화(禍)를 자초한 셈이다.
괴담 부추긴 김기춘 실장 발언
세월호 참사 발생 80여일 후인 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집요하게 캐묻는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던 김 실장이 갈라진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저는 모릅니다. 대통령의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가 결국 정권을 막다른 궁지로 모는 계기가 될 줄은 김 실장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세월호 7시간’ 괴담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 달쯤 뒤인 8월3일.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세월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비밀리에 접촉한 남성과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증권가 정보지 등을 통해 돌고 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롯데호텔에서 정윤회 씨와 밀회설’ 등이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타고 급속도로 퍼졌다. 괴담은 2년 넘도록 꺼지지 않다가 ‘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세월호 당일 굿판을 벌였다’란 얘기가 나돌더니 급기야 ‘인신공양’설까지 제기됐다.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청와대 굿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오히려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었다. ‘카더라’ 식 뉴스가 경쟁적으로 쏟아졌다. 주류 언론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이게 나라야!’란 구호와 함께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회복불능이 되고 말았다.
현직 청와대 참모 A씨. “김기춘 실장이 3년 전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 당일 관저에서 집무를 보고 있었다고 명확히 밝혔더라면 사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동선을 말하면 안 된다는 맹목적 충성심에 던진 한마디가 결국 대통령에게 칼날이 돼 돌아올 줄은 당시엔 아무도 몰랐다.”
참모들 언로 차단한 ‘문고리 권력’
2014년 12월 세밑을 앞두고 청와대는 또 한 차례 비상이 걸렸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과 십상시 파동’이 인터넷과 SNS를 달구고 있었다. 과거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던 정윤회 씨가 ‘3인방’(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1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2부속비서관)을 배후조종해 박지만 씨를 감시하고, 김기춘 실장을 쳐내려 했다는 확인 안 된 설이었다. 한 언론 보도로 시작된 파동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자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과 홍보수석실 주도로 ‘11인 회의’(홍보전략 참모회의)가 열렸다. 아침 7시 시작된 회의는 어느덧 점심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참모들도 내막을 모르는데 최소한 팩트라도 뭘 알아야 대응할 것 아니냐”는 토로가 이어졌고, 막판에는 “민정수석실 주도로 사실 여부를 조사해 루머에 불과하다는 걸 공개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결론이 모아질 즈음, 난데없이 누군가가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안봉근 비서관이었다. 굳은 표정을 지으며 “윤 수석(당시 윤두현 홍보수석), 잠깐 밖에서 봅시다”며 한마디 던진 뒤 문을 닫고 나갔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B씨의 증언. “윤 수석이 5분쯤 후 다시 들어와 ‘회의 이만 끝냅시다’고 했다. 그날 회의에서 논의된 건 없었던 일로 하자는 거였다. 다들 허탈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갔다.” 다른 C씨의 증언. “나중에 들었는데 안 비서관이 ‘VIP(대통령) 뜻을 당신들이 어떻게 아느냐. 설치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고 했다고 하더라. 한마디로 ‘무대응’이 대통령의 의중이니 가만 있으라는 얘기였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청와대 참모들은 루머가 나돌아도 꿈쩍하지 않는 게 정답이라는 걸 배우게 됐다. 한 참모의 전언. “괴담이란 게 햇볕 아래 내놓으면 금방 사그라지는 것인데, 청와대 실세들은 대통령 의중을 건너짚고 무조건 무시하거나 부인으로 일관했다. 누군가 적극 대응 의견을 꺼내면 곧바로 튕겨져나왔다는 얘기들이 많이 들렸다. 그러니 누가 입을 열겠나. 결국 ‘이 정부 안에서는 입을 꾹 다무는 게 상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참모들의 머리를 지배했다.”
오로지 애국심에 호소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을 보좌하고, 민심 동향 파악을 돕는 핵심 라인(민정-정무수석실) 역할이 정권 초반기에 거의 전무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정무수석실 관계자 D씨. “초대 정무수석인 이정현(현 무소속 의원)을 제외하곤 박준우-조윤선으로 이어지는 정무라인은 사실상 역할이 없었다. 민정라인도 초대 곽상도 수석을 비롯해 홍경식-김영한 수석이 모두 대통령과의 독대와는 거리가 먼 약체였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이런 약체는 기네스 감’이라는 말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그러니 근거 없는 괴담이 나돌아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무-민정라인에서 대응 전략을 지시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참모들이 할 수 있는 게 고작 ‘읍소 전략’이었다. 홍보수석실 관계자 전언. “두 번째 홍보수석을 맡은 이정현 수석조차 3인방에 눌리다 보니 오로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애국심에 호소하고, 충성심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밑에서 일하는 참모들한테도 ‘애국심을 갖고 언론에 난 기사를 알아서 막으라’고만 했다.”
정부 불신에 무차별적으로 확산된 '3대 괴담'
세월호 '잠수함 충돌', 메르스 '공기 중 감염', 사드 '참외 다 죽는다'
세월호 괴담(2014년), 메르스 괴담(2015년), 사드 괴담(2016년)은 박근혜 정부의 ‘3대 괴담’으로 회자된다.
세월호 침몰 당시부터 온갖 확인 안 된 루머들이 나돌았다. 대표적인 게 ‘잠수함 충돌설’이다. 네티즌은 물론 전문가들까지 가세해 충돌설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정부가 알고도 일부러 숨기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3년 만에 물 위로 떠오른 세월호에서 외부 충격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중후군) 사태 발생 때도 갖가지 흉흉한 소문이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공기 중으로 감염된다’는 낭설이 대표적이다. ‘낙타고기 먹으면 메르스 걸린다’ ‘대통령이 중동에서 낙타고기를 먹고 와서 메르스가 퍼졌다’는 괴담까지 퍼졌다.
지난해 7월 정부가 경북 성주군에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하자 정체불명의 괴담이 등장했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 때문에 참외가 다 죽는다’ ‘전자파로 암이나 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괴담은 성주 군민의 사드 반대 목소리를 키웠다.
이 밖에 수서고속철도(SRT) 사업에 대해 ‘KTX를 민영화하기 위한 것’, 의료법 개정과 관련해선 ‘의료 민영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그럴싸한 루머가 떠돌았다.
전문가들은 “괴담은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갖고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진영논리에 빠지면서 괴담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물론 괴담의 온상은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이다.
키워드
→십상시(十常侍)
박근혜 전 대통령 주변에 있던 보좌진을 일컫는 말. 원래는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때 조정을 농락한 10여명의 환관(내시)을 가리키는 말이다. 2012년 대선 때 정치권에서 박근혜 캠프 내 핵심 보좌관 10여명을 십상시라고 부른 게 시작이다. 이 단어는 2014년 부활했다.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내부 문건에 ‘십상시가 비선실세 정윤회 씨의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다. 이때의 십상시는 청와대 내 보좌진 10명이 주인공이었다. 십상시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인물은 계속 바뀌었다.
→11인 회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민감한 현안에 대해 논의하던 청와대 내부 회의체. 국정기획·정무·홍보수석과 이들 수석실 내 일부 비서관 11명이 참여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식 회의체가 아니다 보니 정확한 명칭은 없었다. 홍보대책회의, 현안대책회의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 박 전 대통령의 일정과 메시지, 현안에 대한 정부 대응 방안, 언론보도 대응 등이 이 자리에서 결정됐다.
특별취재팀 park2013@hankyung.com
특별취재팀
정종태 경제부장, 장진모 정치부장, 주용석 산업부 차장, 조진형 지식사회부 기자, 도병욱 산업부 기자, 김주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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