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성철 총장 "지금 KAIST에 가장 필요한 건 도전 DNA"

입력 2017-04-09 19:45  

'제2 터먼 보고서' 작성 추진

2031년까지 새 비전 제시…글로벌 스타 벤처 육성할 것
무학과 제도 내년 첫 도입…기초과학·기초공학 역량 강화



[ 박근태 기자 ] “2000년에 한국과학원(KAIST의 전신)은 한국의 산업 및 공업기술 발전과 직결돼 있을 것이다. 과학원 졸업생은 한국의 전 산업계, 또 한국의 정부기관에서도 지도적 위치에 있을 것이다. ”

산학협동 모델을 통해 실리콘밸리를 키우는 데 크게 기여한 프레데릭 터먼 전 미국 스탠퍼드대 공대 학장은 1970년 한국과학원 설립의 바탕이 된 보고서에서 당시 존재하지도 않은 KAIST의 미래를 이렇게 확신했다. 훗날 이른바 ‘터먼 보고서’로 더 유명해진 이 보고서는 이듬해 한국과학원 설립의 근거가 됐다. 그리고 목표는 대부분 이뤄졌다.

KAIST가 개교 46년 만에 학교 설립의 핵심 근거가 되는 터먼 리포트를 다시 쓴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KAIST는 그간 산업 발전에 이바지할 인재 양성이라는 소명을 다했다”며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학교 목표를 다시 수립하는 제2의 개교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신 총장은 2031년까지 학교의 새 비전을 담은 제2의 터먼 리포트를 작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1970년대 초 작성된 터먼 리포트가 지금의 KAIST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세계적 선도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 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AIST 안팎에서는 변화의 목소리가 높다. 주요 경쟁 상대인 스탠퍼드대가 세계적인 기업과 기술의 산실로 평가되고 있지만 KAIST엔 아직 세계적인 스타 동문기업이 없다. KAIST 동문 출신이 세운 기업은 1113개, 이 중 64개가 상장했고 이들의 연간 매출은 14조4000억원, 고용인원은 3만3000명에 이른다. 스탠퍼드대 졸업생 출신 기업만 4만곳, 직원 수가 540만명인 것과 비교된다. “KAIST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안정된 직장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꿈이 크지 못하고 도전 정신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KAIST는 2015년 박사 졸업생 1만명 시대를 열었지만, 박사 졸업생 10명 중 7명은 대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고 있다.

“얼마 전 한 교수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구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료는 구글 같은 편한 직장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진취적으로 비춰지는 구글 역시도 미국에선 이제 편한 직장으로 평가됩니다.”

신 총장은 무엇보다 도전 정신을 뒷받침할 언어 소통 능력 부족이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상당수 과학고 출신 입학생이 일반대학 학생들보다 언어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신 총장은 미국 나스닥에 많은 벤처를 진출시키고 있는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의 경쟁력은 강력한 유대계 네트워크와 함께 자유로운 영어 소통 능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교원과 학생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한글과 영어를 모두 쓰는 이중언어 캠퍼스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이유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초대 총장을 맡은 경험은 신 총장에겐 실험의 시간이었다. 그는 DGIST 총장으로 있으면서 무학제 트랙을 시범 도입하는 등 미래 대학의 인재상에 대한 철학을 갖게 됐다고 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당당히 맞설 혁신적인 사람은 기초가 튼튼하고 인문사회 교양이 풍부하고 다른 사람과 잘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나갈 사람입니다.” 그는 KAIST가 미래 인재 교육의 세계적 중심이 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KAIST는 내년부터 물리학과나 기계공학과 같은 세부 전공 외에도 별도로 무학과 제도를 도입한다. 무학과 트랙에 선발된 학생은 물리학과 수학, 생물학 같은 기초과학이나 소프트웨어코딩, 빅데이터, 자동제어 등 기초 공학의 핵심 분야를 집중적으로 익히게 된다.

어느 분야에나 진출할 수 있는 기초 실력을 튼튼히 쌓은 융합이학사 또는 융합공학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다. 무학과 트랙 전공자에게 인문사회학적 소양 교육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공계 학문이 좌뇌 교육에, 인문사회학 교육이 우뇌 교육에 집중된 점을 개선해 창의력을 키울 이공계 인력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창의력 기초가 인문학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공계 학생들도 민주주의가 각국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같은 과학도 미국과 영국에서 어떻게 각각 발전했는지 비교할 ‘통섭 능력’이 필요합니다.”

신 총장이 설명하는 미래 대학의 지향점은 분명했다. “선진국을 보면 보스턴에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있고 실리콘밸리에는 스탠퍼드대가 있습니다. 미래 대학은 인재 양성, 연구,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의 진앙이 돼야 합니다.” 신 총장은 정부 연구개발(R&D) 정책의 철학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정부 R&D 투자가 평균 11%씩 증가했지만 임팩트 있는 연구가 없습니다. 신지식을 창출하든지,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U’자형 개발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특정 분야에 투자하기보다 뛰어난 인재를 보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 신성철 KAIST 총장

△1952년 대전 출생 △서울대 응용물리학과 졸업 △KAIST 고체물리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재료물리 박사 △미국 이스트먼코닥연구소 수석연구원 △KAIST 국제협력실장 기획처장 부총장 △고등과학원 설립추진단장 △한국물리학회장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대 및 2대 총장 △한국연구재단 정책자문회 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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