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14일 "합의점 찾아"
15일엔 "대우조선 망해도 회사채 갚아달라" 재차 요구
정부·산업은행 16일 최후통첩 "국민연금 동의안하면 P플랜"
국민연금, 16일 밤 투자안 개최 "찬성하는 게 기금 수익에 유리"
[ 이태명 / 유창재 / 정지은 기자 ]
대우조선해양 회생 여부를 좌우할 산업은행과 국민연금공단의 채무재조정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지난달 23일 정부와 산은이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을 발표한 지 24일 만이다.
막판까지 결말을 예측하기 힘든 협상이었다. 지난 14일 오전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던 협상은 17일 0시15분께 국민연금이 수용 결정을 내리기까지 숱한 난항을 겪었다. 결렬 위기도 두 차례나 있었다. 국민연금의 채무재조정안 수용 결정으로 대우조선은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합의점 찾았다”에서 말 바꾼 국민연금
산은과 국민연금 간 협상의 핵심은 ‘회사채 상환 보장 방식’이다. 산은은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에 ‘보유 회사채 50% 출자전환, 50% 3년 상환유예’를 요청했다. 출자전환하는 주식은 회수하기 어렵지만 상환유예분 50%는 3년 뒤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연금은 그러나 ‘반드시’라는 단어를 문제 삼았다. ‘반드시’ 상환한다는 걸 어떻게 보장할 거냐고 따지고 들었다.
양측이 팽팽히 맞선 지난 13일 밤 이동걸 산은 회장과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전격 회동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다음날인 14일 오전 강 본부장은 “합의점을 찾았다”는 보도참고자료까지 냈다. 하지만 오후 들어 상황이 돌변했다. 산은은 이날 오전 회사채 만기일인 2020년에 에스크로계좌를 개설해 대우조선의 여유자금을 상환용으로 넣어두고, 2019년 이후 대우조선 사정이 개선되면 회사채를 조기 상환하겠다고 제안했다. 사채권자들에 갚아줄 돈을 대우조선이 가져다 쓰지 않도록 따로 비축해두겠다는 의미다. 다만 회사채 상환을 산은이 보증해달라는 건 관련 법상 도저히 들어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어떤 상황에서도 상환한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며 “대우조선이 파산하더라도 산은이 회사채를 갚아주겠다는 보증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정부와 산은은 발칵 뒤집혔다. 정부 관계자는 “‘최순실 트라우마’로 국민연금이 결정장애에 빠져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전했다. 1차 결렬 위기였다.
끝까지 보증 요구한 국민연금
15일 양측은 협상을 이어갔지만 진전은 없었다. 이날 오전 산은은 추가 제안서를 국민연금에 보냈다. 에스크로계좌 개설과 함께 2020년 이후 대우조선의 회사채 상환 여력이 없을 경우 국책은행이 신규 투입하기로 한 2조9000억원으로 갚아주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2년마다 대우조선을 실사해 현금 흐름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나면 회사채를 조기 상환할 수 있다는 제안도 했다.
오후 6시, 국민연금이 추가 요구를 해왔다. “대우조선은 당장 청산하는 게 낫다. (대우조선이) 망할 경우 회사채 상환을 보증한다는 약속을 해달라”는 요구였다. 정부 내에선 “국민연금이 몽니를 부려도 너무 부린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2차 결렬 위기였다.
15일 오후 7시, 정부와 산은·수은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방침을 정했다. 국민연금에 최종안을 제시한 뒤 “이 시간 이후 추가 협상은 없다. 안 받아들이면 대우조선을 P플랜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산은·수은의 최종안은 종전 제안에 두 가지를 추가했다. 대우조선이 청산할 경우 사채권자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을 에스크로계좌에 곧바로 넣어주고, 내년부터 1년 단위로 대우조선을 실사해 여유자금이 있으면 회사채를 조기 상환하겠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이 지금 당장 청산하면 회사채·CP 투자자는 1조5000억원 중 6.7%(1000억원)만 회수할 수 있다. 국민연금 등이 채무재조정에 동의하면 그 즉시 청산 시 회수가능액 1000억원을 법원 인가를 받아 에스크로계좌에 넣어주겠다는 게 산은·수은의 마지막 제안이다.
산은·수은은 또 채무재조정안이 통과되면 대우조선에 투입하기로 한 2조9000억원의 한도성 대출을 당초 2021년에서 회사채 최종 상환기일인 2023년까지 연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산은과 수은은 16일 최종 제안서를 32개 기관투자가에도 동시에 보냈다.
최종제안서를 받아든 국민연금은 이날 오후 9시가 넘어 투자위원회를 개최했다. 3시간 넘게 진행된 투자위의 최종 결론은 ‘채무재조정안 수용’이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만기 연장 회사채를 상환하겠다는 산은의 약속을 종합적으로 심의했다”며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하는 것이 기금의 수익 제고에 더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 찬성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태명/유창재/정지은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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