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황소상' vs '소녀상' 누가 이길까

입력 2017-04-1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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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심기 특파원) 미국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에 설치된 ‘황소상’과 ‘두려움 없는 소녀상’을 둘러싼 논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황소상을 마주보고 서 있는 소녀상이 애초의 황소상이 상징하고 있는 자유와 평화, 강인함과 인류에 대한 사항이라는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작가의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쟁점도 공공설치 예술이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까지 존중해야 하는지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황소상의 제작자인 아르투로 디모디카는 기자회견을 열고 “소녀상은 내 작품을 모욕하고 있다”며 뉴욕시에 철거를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자신의 작품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보고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강조했다.

높이 50인치(127cm) 크기의 소녀상은 지난달 8일 국제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의 권리신장을 위한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투자자문사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SSGS)가 설치했다. 미국 3000대 기업중 25%가 여성 등기임원이 없을 정도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리천정’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주먹을 쥔 손을 허리춤에 차고 황소를 노려보는 이 소녀상은 설치 후 약 한 달 뒤인 이달 2일 철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계속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여론도 합세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뉴욕시는 결국 영구 설치를 주장하는 요구에 밀려 설치기간을 1년으로 연장하는 타협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황소상의 제작자가 반기를 들었다. 소녀상으로 인해 황소상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변질됐다는 이유에서다. 뉴요커들 사이에서 곧바로 공공 예술작품이 어느 정도까지 저작자의 의도를 존중해야 하는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소녀상을 철거해야 하다는 쪽의 주장은 황소상을 제작한 디모디카가 더 이상의 자신이 의도를 보여줄 수 없게 됐다는 점을 들고 있다. 황소상이 의도하지 않게 성차별 이슈의 희생양이 되면서 작가로서의 권리가 침해당한 만큼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녀상으로 인해 황소상이 불합리한 권력을 뜻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반면 소녀상 철거 반대론자들은 예술, 특히 공공설치 예술은 원래 작가의 의도와 달리 예기치 못한 해석을 낳게 된다며 이는 자연스러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예술은 작가와 일반인들의 ‘대화’이며 황소상이 소녀상의 가세로 새로운 해석을 받게 됐으며 이는 오히려 환영할 일이라는 반론이다. 소녀상이 사라지면 황소상이 여성 평등을 막으려는 남성을 대표하면서 더욱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다양한 대안도 나오고 있다. 소녀상을 월스트리트가 아닌 유엔 빌딩앞과 같은 제3의 장소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과 황소를 마주보고 있는 소녀상을 틀어 황소상과 같은 방향을 보도록 하거나, 아예 소녀상을 황소상 옆에 나란히 놓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높이 11피트(3.4미터), 무게 7100파운드(3200 kg)의 황소상도 원래 ‘게릴라 작품’으로 시작됐다는 것. 1989년 12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뉴요커를 위한 깜짝선물로 디모디카가 기습설치한 것이다. 황소상은 그러나 NYSE 요구로 다음날 곧바로 뉴욕경찰(NYPD)에 의해 철거됐다가 뉴요커들의 보존 요구에 밀려 지금의 월스트리트 금융지구의 초입쪽에 다시 설치됐고, 이후 자본주의의 번영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끝) /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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