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술탄 개헌'에 분열 가속화…곳곳서 "투표 무효" 반발 시위

입력 2017-04-18 17:51   수정 2017-04-19 05:40

개헌안 국민투표 후폭풍
"관인 없는 투표용지 유효표로" 야권, 재검표 요구하며 항의

국가비상사태 또 3개월 연장
에르도안, 사형제 부활 예고…EU 가입도 백지화 위기



[ 추가영 기자 ] 터키 정치체제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전환하는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51% 이상의 찬성표를 얻으며 통과했지만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터키 야당은 부정투표 정황을 지적하며 지난 16일 치러진 국민투표 무효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개헌으로 ‘제왕적 대통령’ 지위를 얻게 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런 주장을 일축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연장해 ‘숙청 정국’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력을 틀어쥐면서 그동안의 세속주의(정교 분리)와는 거리를 두고 여성들의 히잡을 부활시키는 등 이슬람화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부정투표 정황 속출

터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은 선거관리위원회(YSK)가 관인이 찍히지 않은 표까지 유효표로 인정했다며 국민투표 자체가 무효라고 지적했다.

뷜렌트 테즈잔 CHP 부대표는 17일(현지시간) 앙카라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적으로 상황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관위가 투표를 무효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2야당이자 쿠르드계 등 소수민족 집단을 대변하는 인민민주당(HDP) 대변인인 오스만 바이데미르 의원은 “반대표가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언론은 찬성표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두 야당은 선관위에 대규모 재검표를 요구했다.

국제선거감시인단도 투표 공정성 의혹을 제기하면서 투·개표 부정 논란에 불을 질렀다. 터키 국민투표 과정을 모니터링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감시단의 세자르 플로린 프레다 단장은 “(관인이 없는 투표 용지를 유효로 인정하는) 개표 과정 후반의 변화는 부정 방지를 위해 마련된 중요한 지침을 훼손하는 것으로 국제기준에 미달했다”고 평가했다. 개헌에 반대하는 시민들도 이스탄불과 이즈미르 곳곳에서 투표 결과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연장된 ‘숙청 정국’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민투표 승리를 발판으로 정적 숙청을 통한 통치 방식을 고수해나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날 터키 내각은 19일 끝날 예정이던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 추가 연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군부의 쿠데타를 진압한 뒤 배후세력으로 재미 이슬람 학자 펫훌라흐 궐렌을 지목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국가비상사태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연장됐다. 약 9개월의 비상사태 기간에 쿠데타 연루 의혹으로 검거된 사람은 4만7000여명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국가 분열은 심해지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며 이슬람주의와 반(反)서방 기조를 내세워 분열전략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는 ‘초승달과 십자가의 전쟁’을 거론하며 이슬람과 기독교 간 종교 갈등을 부추겼다. 독일, 네덜란드 일부 도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친(親)정부 집회를 금지하자 이들 정부를 나치에 비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에르도안의 분열전략은 주효했다. 독일(63.1%), 오스트리아(73.5%), 네덜란드(71%) 등 재외 터키국민 투표에서 압도적인 개헌 찬성률이 나왔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 수도 앙카라, 3대 도시 이즈미르 등 대도시와 안탈리아 등 연안도시에선 반대표가 많았지만 코니아, 카이세리 등 보수적인 내륙도시에선 찬성 몰표가 쏟아졌다.

◆EU 가입 무산되나

터키의 EU 가입 협상은 백지화 위기에 놓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민투표 다음날 지지자들에게 “EU는 지난 54년 동안 우리를 문 앞에서 기다리게 만들었다”며 “필요하면 (EU 가입 여부를 묻는) 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터키는 EU 가입을 숙원으로 삼고 있었으나 지난해 쿠데타 진압 뒤 배후세력 숙청 과정에서 불거진 기본권 훼손 논란 때문에 목표에서 더 멀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에 불만을 품고 EU가 가입 자격 조건으로 제시한 사안들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개헌 국민투표 승리를 선언한 16일 밤에도 EU가 금지하는 사형제 부활을 즉시 총리와 논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U 회원국도 터키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은 “개헌 국민투표 결과는 터키가 EU에 반대한다는 명백한 신호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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