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1800년께부터다. 1차 산업혁명이 일면서 인류는 폭발적인 성장기에 들어갔다. 이후 200여년 동안 모든 것이 이뤄졌다. 농촌·농경사회가 도시·공업사회로 바뀌었고 풍요의 시대도 열렸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공업화혁명, 1980년 이후의 정보화혁명 등 소위 2, 3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놀라운 생산성 향상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리고 맞은 것이 21세기다. 지난 200년 성장의 결과가 공급 과잉이요, 저성장 시대다.
공업화혁명은 포드자동차의 예처럼 ‘소품종 대량생산’이었다. 정보화혁명은 ‘다품종 소량생산’이었다. 고객 니즈는 다양해졌지만 대량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한계를 모두 극복한 ‘다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 등의 발달에 힘입어 개인으로부터 한 개짜리 개별 주문을 받아도 한꺼번에 만들 수 있게 됐다. 4차 산업혁명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품종 대량생산으로 수요 창출
독일 안스바흐에 있는 아디다스 ‘스피드 공장’은 개인별 맞춤형 신발을 제조한다. 한 켤레를 만드는 데 다섯 시간이 걸린다. 비슷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아시아 현지 공장에서는 600여명이 필요하지만 이곳 공장 생산인력은 10명밖에 안 된다. 1인당 한 켤레만 주문한다면 전통적인 생산방식으로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그러나 10만명이 하나씩 10만개를 주문하고 그것을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것도 나만의 신발을!
아디다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4차 혁명을 통해 혁신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제조업이다. 제조업은 그동안 소품종 대량생산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중국 등 저임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겨야 했다. 일자리가 줄 것이란 논란도 있지만 선진국만 보면 저임국으로 내보낸 일거리가 다시 돌아오고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 중요해질 것은 일하는 문화다. 수직적이던 생산문화가 수평적으로, 즉 분권적이고 자율적이며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변화가 예상된다. 고객 정보나 각종 디자인, 그리고 생산효율 등의 데이터를 어떻게 디지털로 바꾸느냐도 큰 과제다. 새로운 생산방식, 기술과 노하우에 대한 직업교육의 필요성도 더욱 높아진다. 컨테이너로 실어 나르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물류체계도 바뀔 것이다.
'야성적 충동' 자극하는 환경돼야
1, 2, 3차 산업혁명에서 성공 조건은 각각 달랐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이디어와 자본이 결합해야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보조금이 아니라 민간 투자가 몰려야 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잡지 않으면 놓칠 것 같다’는, ‘남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한다’는 야성적 충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활성화된 것이 18세기 영국이었고 20세기 미국의 실리콘밸리였다. 결국 나라가 할 일은 지식재산권을 포함한 각종 소유권에 대한 인정을 의미하는 경제적 자유를 드높이고, 모든 것이 법치에 의해 예측가능하도록 하며, 그리고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에 그칠 것이다.
대선후보들의 기대와는 달리 정부가 더 나설수록 한국의 인재와 자본들은 다른 나라에서 4차 혁명의 꽃을 피울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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