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새 3명이나 세상 등져
뒤틀린 '공시 열풍'의 그늘
"민간 좋은 일자리 확대 시급"
[ 이현진/구은서/성수영 기자 ] 지난 24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충북 청주 옥산휴게소 화장실에서 A씨(25)가 목을 맸다. 그의 어머니가 발견했다. 어머니의 승용차로 고향인 경북 구미로 가던 길에 자살을 택한 그는 지난달 치러진 경찰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에서 낙방했다. 어머니는 경찰 조사에서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온 아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쉬게 하려고 함께 내려가던 중 휴게소에 들렀는데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지난달 20일 전북 전주의 한 고시원에서도 공시생 C씨(30)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휴대폰에는 발송되지 않은 “엄마 미안해”라는 문자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올 상반기 7·9급 경찰 소방 등 공무원시험(공시)이 잇따라 치러지고 있는 가운데 이달 들어 ‘공시생 자살’ 사건만 세 건이나 발생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공시생’을 치면 가장 먼저 뜨는 자동완성어가 ‘공시생 자살’일 정도다.
워낙 치열한 경쟁에 희망 고문을 버텨낼 자제력마저 고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취업준비생(65만2000명)의 39.4%인 25만7000명이 일반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공기업·교원 임용고시 등을 포함하면 62.2%가 공공기관 및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셈이다. 이들은 공무원시험을 나이·성별·학력 등 조건과 상관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실상 공시가 마지막 남은 ‘계층 이동 사다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기업에 대한 불신과 회의도 ‘공시 열풍’에 한몫한다. 경직된 기업 문화와 불안한 고용 안정성의 돌파구로 공시를 택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9급 공무원 최종합격자(4182명) 가운데 29.6%는 30세 이상이었다. 늦깎이 준비생이나 장수생뿐 아니라 직장에서 공무원시험을 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이 되는 길은 말 그대로 ‘바늘구멍’이다. 지난해 7·9급 공무원시험 합격률은 1.8%에 불과했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진로를 바꾸기도 어렵다. 3년차 공시생 이모씨(29)는 “7·9급, 경찰시험 등 공시는 몇 달 간격으로 쳇바퀴 돌듯 시험을 본다”며 “여차하면 노량진(공시학원 밀집 지역)에 발목이 잡힌다”고 털어놨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 부담도 커진다. 서울·경기권에 사는 공시생의 월평균 지출액은 83만6000원(주거비 제외). 연간 1000만원 수준이다. 심리적 압박에 경제적 부담이 겹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일부 대선주자가 공공 일자리 확대를 공약으로 내놓고 있지만 문제가 더 꼬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시험을 준비하는 이모씨(26)는 “일시적으로 경쟁률이 낮아지더라도 신규 진입이 계속 늘면서 금방 제자리로 돌아가고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라고 했다. “민간 부문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현진/구은서/성수영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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