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9조 막대한 예산 불구
'문제 생기지 않게' 단속 급급
획기적 시도엔 실패 감수해야
[ 박근태 기자 ]
한국은 정부가 추진하는 중장기 과학기술 계획이 많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18개 중앙행정기관에서 120개 과학기술 중장기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연구개발(R&D) 투자는 올해 19조4000억원에서 내년 20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과학계 안팎에선 이런 훌륭한 지표에도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수준의 R&D 투자 규모와 연구자 수에도 불구하고 연구 전략과 환경의 후진성을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지난 3월 발표한 정책 총서에서 “국가의 R&D 경쟁력은 예산 규모보다 연구자가 얼마나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느냐에 있다”며 “한국은 과학자를 독려해 독창적 R&D 성과를 이끌어낼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큰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막대한 예산과 중장기 계획이 정부가 과학기술을 중요시한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연구자의 창의성과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사업과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 과학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친화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같은 예산으로 연구해도 더 많은 성과가 나올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중장기 계획과 지원 법률이 많지만, 5~10년씩 연구할 도전과제가 적어 단기 소형 과제를 따느라 피로가 쌓이고 있다.
과학계는 사업 선정과 평가, 집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만 하는 행정중심적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연구자를 믿고 투자하는 사람 중심 투자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획기적인 시도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실패를 감수하고 R&D 예산 중 1%를 실패 비용으로 사용토록 제도를 바꾸자는 제안도 나온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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