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콕 집은 펜스 부통령 "방위비 분담 확대 요구할 것"
'돈 내야 동맹' 트럼프의 압박…"사드 비용도 재협상 대상"
FTA·사드·방위비 '재협상 3종세트' 들이밀어
"칼빈슨호 등 한반도 작전 비용도 청구 가능성"
[ 박수진/정인설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1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취임 100일 기념 인터뷰에서 ‘북핵 긴장이 낮아지는 등 적절한 상황이 된다면’이라는 전제하에 이 같은 뜻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그를 만나는 것이 적절하다면 전적으로, 영광스럽게 만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은 2011년 북한 최고 지도자에 오른 뒤 해외 지도자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전날 미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동맹들이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이 안보와 보호를 제공하는 번창한 나라들에 그들의 안보와 관련해 더 많은 것(방위비 분담)을 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해서 요구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해도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비용 한국 부담’ 발언에 이어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비 분담 확대 요구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허버트 맥마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한국과 NATO가 방위비와 책임을 적절하게 분담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며 “사드 및 방위 관련 문제 재협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1일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언론에서 밝힌 내용은 한·미 간 기존 합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으로 본다”며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에드워드 마키 의원은 “우리는 한국에 피해를 주고 결례가 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 대신 이 핵심 파트너(한국)와 함께 동맹을 재확인하고 더 강화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 등 한·미 동맹의 핵심 이슈들을 다시 협상하자는 요구를 들고 나온 데 주목하고 있다. 논의 결과에 따라 한·미 동맹의 큰 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갑작스러운 한국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한·미 FTA에 대해서는 “일자리 킬러”라고 비판하며 재협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주한미군 주둔비(방위비) 분담에 대해서도 “왜 (한국이) 100%(를 부담하면)는 안되느냐”고 따졌다. 적절한 분담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취임 후엔 이런 한국 이슈들에 대해 침묵했다. 그러다 지난달 27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느닷없이 한·미 FTA 재협상(또는 종결), 사드 비용 한국 부담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뒤따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맥마스터 보좌관 등 백악관 최고위층이 지원 사격에 나섰다.
◆방위비·FTA 재협상 손실 클 듯
미국이 재협상을 언급한 만큼 양국 간엔 어떤 형식으로든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관심이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 문제다. 맥마스터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분담금 적정성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5년마다 분담비 협상을 한다. 양국은 분담금 인상률 상한선을 4%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협상 때는 미국의 공세 속에 4% 제한선이 없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한국은 전체 주둔비의 절반가량인 9441억원을 미군 측에 지원했다.
백악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미국이 사드 비용을 내라고 한 것을 보면 한반도와 인근에 전개 중인 전략자산과 인력 등의 비용도 나중에 협상 테이블에 올려 놓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드 비용이 방위비 분담 협상과 패키지로 묶여 한꺼번에 논의될지, 별도로 논의될지는 미지수다.
한·미 FTA 재협상은 난항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한·미 FTA는 끔찍한 협정”이라며 “재협상하거나 종결해버리겠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 FTA에 앞서 북미자유무역(NAFTA), 일본, 중국 등 우선 순위가 높은 협상 상대들이 많다”며 “물리적으로 한·미 FTA 재협상 개시 시기는 일러야 내년 하반기”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일 한·미 FTA 재협상이 추진되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한국의 수출 손실액이 최대 170억달러(약 19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사드 비용 요구 배경 알아야”
주목되는 대목은 이 같은 재협상 요구가 백악관 최고위층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이런 논의는 학계나 워싱턴 내 싱크탱크에서 분위기를 잡은 다음 의회나 백악관으로 전달돼 최종 결정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번엔 그런 절차 없이 백악관 최상층부에서 톱다운 방식으로 제기됐다. 해석은 크게 두 가지다. 한국 관련 이슈를 논의할 때가 됐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기선제압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 등 백악관 인사들이 한국에 뭔가 서운하거나 불쾌한 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정인설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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