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화설비 비중 최저인데 석유사업 이익은 고공행진
빅데이터로 최적의 조합 찾아
장기 계약 비중 45%로 낮추고 현물시장 모니터링 경제성 확보
300여종 원유 샘플 보유…최상의 품질 비율 연구
이란·러시아산 업계 첫 도입…수입선 다변화에 협상력도↑
[ 고재연 기자 ]
SK이노베이션은 국내 정유 4사 중 고도화설비 비중이 17.7%로 가장 낮다. 비율이 가장 높은 현대오일뱅크(39.1%)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은 석유사업에서 ‘깜짝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석유사업 매출은 전체의 70%에 달하는 8조636억원, 영업이익은 4539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16% 증가한 수준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조(兆)단위의 비용이 들어가는 고도화 설비 투자 대신 빅데이터를 활용한 ‘과학적 최적운영’에 집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과학적 최적 운영은 쉐브론, 엑슨모빌 등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연간 약 10억달러 이상의 추가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의 약점을 역(逆)이용해 수익을 극대화한 사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유 전량을 수입하는 에쓰오일의 경우 1년 이상의 장기원유계약에 따른 도입 비율이 100%다. 그만큼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하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중동 지역에만 전폭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SK이노베이션은 장기계약 비율을 동북아 지역 정유회사 가운데 가장 낮은 50% 이하로 낮춘 뒤 현물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가장 싼 가격에 원유를 구매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수급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시장 환경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학적 최적 운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전 세계 300여종의 원유 샘플을 가지고 있다. 자체 개발한 빅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인 ‘크로노스’를 통해 원유 가치를 분석하고 5만여개의 변수를 고려해 최적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유 조합 비율을 찾아낸다. 설비 조건, 원유의 성질, 재고 현황 등 수많은 변수를 계산해 매달 30~40여종의 유종을 수입한다.
정준영 SK에너지 운영최적화팀 팀장은 “단순히 값싼 원유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원유의 내재적 가치와 공정 반응성을 분석해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게 핵심”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 운영 능력, 정보력과 협상력을 기반으로 한 트레이딩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원료 다변화’로 시장의 패러다임도 바꿨다. 지난해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직후에는 저렴한 가격에 이란산 원유(콘덴세이트)를 대량 도입했다. 정제 마진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진 2014년에는 원유보다 훨씬 저렴한 벙커C유를 도입해 적자 폭을 줄였다. 이어 올초엔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높아진 러시아 우랄산 원유를 업계 최초로 들여왔다.
원료 다변화를 시도하자 중동산 원유에 대한 ‘협상력’이 덩달아 올라갔다. 중동 산유국들은 ‘아시아 프리미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5월 아시아 원유판매가격 조정계수(OSP)를 지난 4월보다 배럴당 0.3달러 인하했다.
‘속도전’에도 힘이 붙기 시작했다. 원유를 운송하는 시간 때문에 평균 3개월 전에 원유 도입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2개월로 줄인 것이다. 덕분에 수익성에 영향을 주는 유가 변동, 환율 등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정제 마진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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