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은 기자 ]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이 시작되기 전까지 미국 언론사 ‘브레이트바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주류 언론사들이 거의 대부분 트럼프 후보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가운데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낸 브레이트바트는 눈에 띄는 매체였다.
‘이데올로기 저널리즘’을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는 이 비주류 언론사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탄력을 받았다. 창립 멤버이자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스티븐 배넌은 백악관 수석전략가 자리를 꿰찼다.
브레이트바트가 충성을 다할 것은 불문가지다. 트럼프의 활약상을 연일 상찬하는 데 여념이 없다. 최근 71페이지짜리 전자책 형태로 내놓은 ‘트럼프 취임 100일 스페셜 리포트’는 화룡점정이다. 트럼프 취임 후 날짜별로 있었던 일을 정리한 이 리포트에서 브레이트바트는 그의 지지율이 낮은 원인은 적대적인 (다른) 미디어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트럼프의 위기를 돌파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지난 3월 말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법) 폐지 표결이 공화당 일부의 반대로 불발했을 무렵,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을 ‘트럼프케어’로 표현한 주류 언론사와 달리 브레이트바트는 이 법안을 꾸준히 ‘라이언케어’로 불렀다. 트럼프의 실패가 아니라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 의장의 실패로 규정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최근 브레이트바트 뉴스를 읽다 보면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되 그 아래 있는 인물들을 ‘저격’하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톱 뉴스로 뽑히는 중이다. 한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타깃이었고, 지난 3일에는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민주당에서 (보잘것없는) ‘울타리’ 설치 예산을 승인받았으면서 ‘장벽’ 설치 예산을 따냈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보도가 톱으로 올라갔다. 배넌이 트럼프 정부 내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온 시기와 이런 기사들의 빈도가 증가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맞물린다.
이런 어긋남은 브레이트바트로 대표되는 트럼프 지지층과 트럼프 정부를 구성한 엘리트들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른바 대안우파로 불리는 백인 우월주의를 기반으로 한 트럼프 지지층은 반(反)이민자, 반이슬람, 반유대주의, 여성 및 성소수자 혐오 등의 성향을 갖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 지지자의 전부는 아니지만 한 부분을 형성하는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세력의 지지를 받았고 반이민 정책 등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간극도 있다. 예컨대 브레이트바트는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이 유대인이었고 예루살렘에 특파원을 둔 친(親)이스라엘 매체를 표방하지만 독자들의 뿌리 깊은 정서는 반유대주의다. 기사에도 종종 반유대주의적 표현이 등장한다. 배넌의 전 아내는 2007년 그와의 법정다툼에서 그가 실제로는 반유대주의자라고 증언했다. 본인은 당연히 이를 부인했지만 유대교 신자 쿠슈너와 이방카 트럼프에게 배넌은 ‘위험인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대선기간 표를 얻기 위해 남발된 국수주의적·보호주의적 경제 및 통상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도 지지층과 트럼프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요인이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월가 출신 엘리트 인사들 사이에서 선동가 배넌의 입지는 이미 상당폭 좁아졌다. 경제부문에 특화된 선동가였던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도 마찬가지 처지다. 그런 조정이 이뤄진다는 것은 미국 시스템의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넌으로 상징되는 트럼프 지지층에게 토사구팽의 불안을 자극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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