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북한 제재법안 압도적 가결
연 23억달러 돈줄 말리기
북한 인력 쓰는 외국기업 제재…중국·러시아 협조가 관건될 듯
개성공단·금강산관광도 대상
대북제재 '구멍' 없애기
북한 활동 잦은 아세안국에 제재 철저이행 강화 요구도
[ 박수진 기자 ]
미국 하원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외화를 말리기 위한 강력한 대북제재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외화 조달원인 인력 수출을 막겠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은 북한에 우호적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에도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안을 철저하게 이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북한 노동자 채용금지 시행 여부 관심
미 하원은 4일(현지시간) ‘대북제재 및 현대화법’을 찬성 419표, 반대 1표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그만큼 미 정치권에서 북핵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북한 노동자 채용 금지다. 북한 인력을 고용하는 3국 기업에 미국과의 거래를 중단시키겠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현재 러시아 중국 쿠웨이트 카타르 몽골 아랍에미리트(UAE) 등 세계 40여개국에 5만8000여명의 노동자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공식 자료가 없어 추정 기관별로 4만~11만명으로 편차가 크다.
이들이 한 해 벌어들이는 외화규모는 2억~6억달러, 많게는 23억달러에 이른다고 추정하는 기관도 있다. 북한의 연간 외화수입(40억~50억달러) 중 광물 수출에 이어 두 번째 수입원이다.
북한 노동자 채용금지 조항은 한국과 북한의 경제협력 사업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국의 차기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하려 해도 기업들이 북한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이번 법안에 의한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어 재개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강산 관광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27일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핵 폐기를 위한 협상 테이블이 놓인다면 그 단계에서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北, 4년 내 美 핵공격 가능”
미국 등은 일찌감치 외화벌이 목적의 북한 노동자 송출을 제재했다. 그러나 실효성이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 등은 외교·경제적 이유로 오히려 북한 노동자 수용을 확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중국과 러시아는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한다”며 “새로운 법안이 미국에서 발효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법안을 발의한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북한 정권은 4년 안에 핵·미사일로 미국 본토 전역을 공격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며 “새 대북제재 법안은 북한 정권과 거래하는 자들을 추적하고 제재함으로써 미국 정부에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강력한 수단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美 “아세안도 제재 적극 동참해야”
이번 법안에는 2008년 해제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위도 되살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법안 통과 이후 행정부가 90일 이내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지 여부를 의회에 통보하도록 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아세안 소속 10개국 외무장관들과 만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이행을 강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틸러슨 장관은 “중요한 것은 북한이 도발적인 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사용된 수익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북한과의 외교관계도 최소화해 달라”고 말했다.
아세안 회원국 10개국은 모두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이 중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5개국은 평양에 대사관이나 대표부를 두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북한이 무기 거래나 외화벌이를 지속하며 외교적 고립을 피하는 주 무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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