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상징적 정책 우선 추진하고 전리품 나누듯한 인사 말아야"
[ 임근호 기자 ]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끝까지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대통령 본인과 주변 사람이 오만하게 생각하는 순간 국민과 멀어지고 실패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8일 서울 반포동 한 커피숍에서 만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사진)의 말이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강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한국정치 전문가로 지난해 한국정치학회장을 지냈다. 관련 분야 교수, 학자, 연구원 등 2200여명을 회원으로 둔 국내 최대 정치학회다.
강 교수가 “대통령은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 데는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5년이라는 임기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3년에서 4년 반 정도”라며 “우선순위를 세워 해당 정부를 가장 잘 상징하는 정책을 임기 초반에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국산 소고기 문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인사 문제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며 “자신이 첫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군부 청산 등 중요 과제를 임기 초반에 잘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는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이라고 무조건 부정하고 비판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강 교수는 “자신이 점령군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이 많다”며 “정권이 바뀌면 정책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좋은 정책은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노무현·김대중 정부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정하고, 박 전 대통령은 이전 정권의 녹색성장을 폐기하려고만 했는데 이런 태도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대통령이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할 또 다른 분야는 인사다. 강 교수는 “각계각층에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많은 대통령이 전리품 나누듯 자리를 분배하거나 폐쇄적이고 제한된 인재 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첫 인사를 잘해야 야당과 여론의 비판을 최소화하면서 임기 초반 중요한 국정과제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한 걸음 진전했다”고 진단했다. “30여년 전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가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이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라고 한 시기죠. 그런데 지금 한국만큼 민주주의를 잘 정착시킨 나라가 없습니다. 태국은 군부가 집권하고 있고, 터키는 권위주의 독재체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
그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도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극단주의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힘을 얻었다”며 “한국에서도 이런 불만이 있었지만 대통령 탄핵으로 어느 정도 해소돼 이번 대선에서 포퓰리즘이 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한국이 발전하려면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정치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스웨덴은 사민당이 40년 넘게 집권하면서 복지국가 시스템을 마련했어요. 일본도 자민당 장기 집권이 전후 경제 부흥의 바탕이 됐고요. 헬무트 콜 독일 총리도 16년 동안 재임하면서 독일 통일을 이뤄냈고, 영국 보수당 역시 마거릿 대처 총리가 18년 동안 집권하면서 개혁을 이뤄냈습니다. 한국도 내각제 등 제도화된 형태로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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