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에 따른 보궐선거다. 12월 19일이 아닌 5월에 치러지는 이유다. 5월 ‘장미 대선’은 이름만큼 아름답지는 못하다. 대통령 탄핵과 60일 조기 대선 과정에서 국민은 분열됐다.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졌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했다. 2040과 60대 이상이 갈린 세대대결 양상도 보였다. ‘보수궤멸론’(진보진영)과 ‘종북 좌파공화국’(보수진영)이라는 원색적인 용어에는 증오와 갈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대선과정을 지켜본 많은 국민의 좌절감이 컸을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쏟아내는 지키지 못할 공약에 실망했을 것이고, 그들이 내뱉는 저질 언어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대선 직전까지 30% 안팎의 유권자가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답했다. 말 그대로 마음에 꼭 드는 후보가 없다는 의미다. ‘차악을 선택하는 게임’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다.
투표장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차피 내가 찍을 후보는 당선이 안 될 것”이라며 사표심리 때문에 포기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기권도 다른 정치적 의사표시 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표를 먹고사는 제도다. 혁명도 투표를 통해 하는 게 민주주의다. 투표권 행사는 민주주의 시민의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다.
특히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행사하는 표는 귀중하다. 그게 당선인에게 갔든 2, 3위 후보에 갔든, 아니면 4, 5위 후보에 갔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사표 얘기가 많지만 사표는 없다. 사표는 당선만을 기준으로 따진 기계적인 접근이다. 대선 투표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대선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새 리더와 새정부의 등장해도 대한민국의 정치는 계속된다.
우리가 찍은 한표, 한표는 다 의미가 있다. 내 한표가 특정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면 “내가 찍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며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내가 민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과 여당의 등장을 의미해서다. 2위와 3위 후보에게 가는 표도 똑같이 중요하다. 당장 건강한 야당 지도자와 야당의 등장을 의미해서다. 정부 여당에 협력할 것은 하면서 견제할 것은 강하게 견제하는 건전한 야당이 존재해야 건강한 정부가 가능한 것이다.
4, 5위 후보에게 가는 표도 결코 사표가 아니다. 유권자의 한표 한표가 새로운 미래 지도자를 키운다는 점에서다. 그들이 국민이 원하는 정치지도자로 커가야 우리 정치의 미래도 있다. “마음에 드는 정치인이 없다”고 푸념만 할게 아니라 적극적인 투표권 행사를 통해 좋은 지도자를 키운다는 건설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단순히 정치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정치불신만 쌓일 뿐이다. 저질 정치인은 그대로 존재할 것이고 자연 생산적인 정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투표 불참은 바로 그런 ‘3류정치’를 방치하는 행위다. 적극적인 참여로 정치혁명을 이뤄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아직 투표를 못한 유권자도 오후 8시까지 지정된 투표소로 가면 투표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미래가 투표장으로 향하는 여러분의 발걸음에 달렸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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