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너제이=송형석 기자) “이 자리에 대리석 기둥을 세우면 어떨까.” “글쎄요 건물 분위기와 어울릴지 모르겠네요. 한번 넣어보죠.”
몇년 전만 해도 건축물 디자인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다분히 주먹구구였다. 전문가들의 경험과 감에 따라 일단 만들어 본 후 건물주의 처분을 기다리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뒤늦게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느라 공사기간이 길어지거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 잦았던 배경이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건설 현장에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도입되면서다. 완공된 후의 건물 내부와 외부 모습을 미리 볼 수 있게 되면서 건축 과정에서의 시행착오가 크게 줄었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9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GPU Technology Conference) 2017’에서 자사의 VR 기술을 활용해 만들고 있는 신사옥 공사 현장을 공개했다. 올해 11월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신사옥은 엔비디아의 야심작이다. 모서리가 뭉툭한 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외관 때문에 완공 전부터 실리콘밸리의 ‘랜드마크’로 불리고 있다. 우주선을 형상화한 애플의 쿠퍼티노 신사옥과도 자주 비교된다.
엔비디아는 신사옥 설계 단계부터 자체적으로 개발한 아이레이 VR 시스템을 활용했다. 실제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여러 각도에서 완공 후의 모습을 미리 보면서 공사를 진행해 왔다. 이 시스템의 장점은 디자인을 3차원으로 표현하면서 사물의 질감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렌더링 기술에 있다. 고도의 컴퓨터 기술을 활용, 빛의 방향이나 강도에 따라 건물 내장재의 질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7월의 정오와 구름이 많이 낀 11월의 오후를 가정해 사옥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시뮬레이션하는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신사옥 설계를 총괄한 겐슬러사의 하오코 수석 건축가는 “VR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영감을 얻거나 설계 단계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오류를 바로잡은 사례가 수두룩하다”며 “비용 낭비 없이 건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레이 VR 기술은 건설 이외에도 여러 업종에서 활용할 수 있다. 예컨데 자동차 업계는 VR 장비로 소비자 체험존을 만들 수 있다. 매장에 없는 차량이라 하더라도 VR을 통해 차량 내부 모습을 구석구석 보여줄 수 있다. 넓은 매장을 마련해 수십대의 차량을 비치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가 관련된 기기에 필요한 GPU(그래픽처리장치) 칩 선두 업체다. AI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기 위해 매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신기술 트렌드를 소개하는 행사인 GTC를 열고 있다. (끝)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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