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엔 "북한 포용" 역설
개성공단 · 금강산 관광 재개…6자회담 복원해 북핵 풀 것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미국 언론, 한미동맹 엇박자 우려
선거 막판엔 안보 중시
북한 6차 핵실험 강행 나서면 남북대화는 사실상 불가능
트럼프식 대북압박 노선에 동의…햇볕정책 전면 계승 쉽지않을 듯
[ 정인설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책과 거리를 두며 대북 포용 노선을 강조해왔다. “집권하면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대선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태도가 바뀌었다. ‘조건 없는 대화’에서 “북핵 동결이 전제돼야만 북한하고 대화할 수 있다”고 선회했다. 보수층을 노린 전략이기도 했지만 대북 압박과 제재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많다. 강경 일변도인 주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문 대통령이 어떤 대북정책을 펼지 주목된다.
대북정책 기조 바뀌나
문 대통령은 대선 때 “지난 10년간 한국의 안보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남북대화를 중단해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고 미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과도 협조를 이루지 못해 북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 남북대화와 협력외교를 강조했다. 남북교류를 늘리기 위해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 당사국 간 긴밀한 국제공조의 틀을 복원해야 한다”며 6자회담 체제를 강조했다. 북핵 대응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임기 내에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국으로부터 반환받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미국과 북한에 대해서도 박근혜 정부와 다른 견해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에 ‘No’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북한이 주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할 이야기는 아니다”고 대답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에서 ‘한·미동맹이 향후 엇박자를 낼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4일 “한국 대선에서 남북 화해를 추구하는 문 후보가 당선되면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고 전망했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햇볕정책을 놓고 노무현 정부가 부시 행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트롱맨’에 둘러싸인 한반도
한·미동맹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도발 위협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포함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며 “엄청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폈던 ‘전략적 인내’ 정책을 폐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대신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새 대북 원칙으로 제시했다.
일본도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달 17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에 유입되는 난민을 선별해 받아들이겠다”고 북풍몰이에 나섰다. 아베 정부는 같은달 29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때는 전철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다.
중국에선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을 용인할 것이란 관측까지 흘러나왔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지난달 22일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에 외과수술식 타격을 가한다면 외교적으로 억제에 나서겠지만, 군사적으로 개입할 필요는 없다”며 미국의 선제타격까지 용인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대북 압박에 나서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조·중(朝·中) 관계의 근본을 부정하고 친선의 숭고한 전통을 말살하려는 용납 못 할 행동”이라고 맹비난했다.
문 대통령의 ‘우향우’ 행보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남북 간 상당 기간 대화는 불가능해지며, 우리가 5년 단임 정부임을 생각하면 다음 정부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노선에 사실상 지지 입장을 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미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실패했다는 데 트럼프 대통령과 인식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대북 압박과 선제타격까지 얘기하고 있지만, 이는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보이며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방식에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워싱턴보다 평양을 먼저 가겠다’고 했던 작년 말 발언에 대해서는 “북핵을 해결할 수 있다면 미국, 일본과 충분히 먼저 논의한 뒤 북한에 가겠다는 말”이라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과 ‘대화를 위한 대화’는 있을 수 없으며, 북핵 문제가 해결될 여건이 마련되고 나서야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김열수 성신여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며 “주변 국가들과 공조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과 무조건 대화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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