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혜 문화부 기자) “한국에서 제일 재밌는 방송은 선거방송인 듯.”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지난 9일 각 방송사가 진행한 개표 방송을 보던 한 네티즌이 트위터에 쓴 글입니다. 이번 개표 방송에서는 시청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각 방송사의 노력이 크게 돋보였습니다. 컴퓨터그래픽(CG)은 물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뛰어넘는 혼합현실(MR) 등 첨단 기술이 총동원돼 이색적 볼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선거 개표방송은 방송 재료가 지상파 3사(KBS·SBS·MBC)의 공동 출구조사 결과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하는 개표율과 후보자별 득표율, 판세 분석 등으로 한정돼 있어 지루해지기 쉽습니다. 이런 방송 특성을 극복하려는 방송사들의 노력에 시청자들은 리모콘 채널 돌리기에 바빴습니다.
2012년 대선 때 개발한 그래픽 표출 시스템 ‘바이폰’을 가진 SBS의 개표방송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후보들이 벌이는 경쟁을 미국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한 ‘대선 게임, 권좌를 찾아서’로 꾸민 게 인기가 많습니다. ‘권좌를 찾아서’는 대선 후보들의 얼굴을 ‘왕좌의 게임’ 각 캐릭터에 합성해 예측 및 개표 현황을 보여줬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인형뽑기에 비유해 ‘픽 미(pick me)’ 배경 음악에 맞춰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것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게임 ‘포켓몬 고’ 게임을 패러디한 ‘투표몬 고’로 대통령 후보를 잡는 그래픽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MBC는 자사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패러디한 ‘복면표왕’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후보자들의 지역별 득표율을 제시할 때 복면을 쓴 세 인물의 실루엣과 득표율을 먼저 보여준 뒤 복면을 벗겨 각 득표율의 주인공인 후보자 얼굴을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외벽의 대형 LED 화면에 실시간으로 띄운 개표 상황도 볼거리였습니다.
지난 몇 년은 안타까운 일이 유독 많은 시기였지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고등학생들의 죽음,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인한 20대 청년의 죽음, 대구 서문시장 화재,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까지. 잇단 대형 사건·사고에 상처받은 민심을 어루만지는 ‘힐링’ 코드가 개표 방송에 녹아든 점도 이번 대선 개표 방송의 특징이었습니다.
SBS는 커다란 흰 곰 ‘투표로’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후보들의 지역별 득표율을 보여주는 CG를 만들었습니다. 서울 득표율을 보여줄 때 투표로는 지난해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후 벽에 붙은 추모의 포스트잇 앞에 서 있었지요. 대구 지역 득표율을 보여줄 땐 화재로 고초를 겪은 서문시장의 검은 연기를 몰아내고, 전남에서는 노란 리본이 걸린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네티즌들은 “각 지역이 겪은 아픔을 되짚고 위로하는 장면이 뭉클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화제성과 시청률이 일치하지는 않았습니다. 화려함보다는 정보 전달 기능에 충실했던 KBS가 중장년층의 높은 선호를 받아 시청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9일 투표가 마감된 오후 8시를 전후로 각사의 시청률은 KBS 1TV 12.2%(오후 7시30분~9시) SBS 7.2%(오후 6시51분~9시2분), MBC 5.9%(오후 6시46분~9시47분) 등을 기록했습니다. 각사의 방송 시간과 광고 시간이 달라 절대 비교와 합산은 되지 않습니다. 지난 탄핵 정국에서 인지도를 크게 높인 JTBC는 9.438%(오후 7시45분~9시29분)로 SBS와 MBC를 앞질렀습니다. (끝) /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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