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 누가 더 좋은 친구인지 구분해야"

입력 2017-05-10 19:19   수정 2017-05-11 05:10

'트럼프 정책 멘토'의 제언 - 에드윈 퓰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인터뷰

"북핵 해결 위해선 한·미·일 한목소리 내야
중국의 사드 보복은 남중국해 문제 덮으려는 '꼼수'
한·미 FTA 5년…종결보다 일부 수정만 하면 돼"



[ 김현석 기자 ]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동북아시아 외교·안보지형에 큰 변화가 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려는 그의 대북 정책에 세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국의 혈맹이자 한반도 문제의 최대 이해관계국인 미국 내 전문가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퓰너 이사장(76)은 “한국과 미국은 외교·안보·경제 분야의 이익 방향이 같다”며 “그 공통된 이익을 키워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햇볕정책이 북핵 개발을 도왔다는 것을 문 대통령이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한국의 역사를 보면 미국이 더 좋은 친구인지, 중국이 더 좋은 친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0일 세계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2017 몽펠르랭소사이어티(MPS) 서울총회’에 참석한 그를 만나 한·미 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봤다. 퓰너 이사장은 대표적인 친한(親韓)파로 꼽힌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은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하려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월 초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리조트에서 만나 북핵 해결을 위해 공조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겠다고 했죠.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반군에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군을 폭격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놓치고 있지만 그는 이날 회담을 통해 중국과 북한에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은 모든 것을 얘기하지 않고, 또 예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미국에는 한국 유학생 8만명이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두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기도 합니다. 한·미는 함께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문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합니까.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군사력을 쓰려는 곳은 한국뿐이 아닙니다. 일본, 미국도 대상입니다. 이럴 때 한국, 미국, 일본이 갈등하고 이견을 내는 건 좋지 않습니다. 북핵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3개국이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문 대통령이 미국과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이익 방향이 같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김대중 전 대통령 때를 돌이켜보면 어떻게 북한 문제를 해결할지 답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햇볕정책을 통해 한국은 북한에 70억달러가 넘는 돈을 줬습니다. 그리고 뭘 얻었나요. 평화? 북한 사람들의 복지? 아닙니다. 핵 개발 등 북한의 군사력 증강만을 얻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런 결과를 직시해야 합니다.”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은 갑작스레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을 한국이 내라고 했는데요.

“한국이 사드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드는 한·미동맹에 근거한 공동 방어무기입니다. 미국도 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이익을 얻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동맹국들과 방어비를 좀 더 공평하게 분담하겠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대표적입니다. 미국은 NATO 비용의 70%를 내고 있습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는 뭘하고 있지요?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가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동맹국들이 더 많은 부담을 질 수 있도록 요구합니다. 한·미동맹은 NATO와 다릅니다. 나는 미국과 한국이 방어비(주한미군 주둔 비용)를 공평하게 부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아시아를 순방하면서 한국을 가장 먼저 찾도록 한 게 이를 대변합니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국을 압박하고, 경제적 보복을 가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한국을 협박하는 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드는 기본적으로 레이더 탐색거리가 짧습니다. 북한을 향한 것이지 중국을 향한 게 아닙니다. 중국이 강하게 나오는 건 다른 이슈와 연계하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남중국해로 진출하며 각국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미국으로선 이게 약간 거슬릴 수 있는데, 중국은 이를 사드 문제로 덮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걸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시 주석과 만났을 때 사드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중국이 그렇게 하는 건 나쁜 것이고,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나쁜 협정이라며 재협상하거나 종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한·미 FTA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몇 가지 행정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5년 전 한·미 FTA를 발효시켰을 때 미국은 좀 더 많은 자동차를 한국에 수출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한국 관료들은 수입되는 쉐보레 차량의 부품목록을 내놓으라는 등 비관세장벽을 들이밀었습니다. 협정 자체가 나쁜 게 아니고 충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조만간 재협상에 들어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한·미 FTA와 다릅니다. NAFTA는 발효된 지 25년이나 됐어요. NAFTA를 맺을 당시 멕시코로의 에너지 수출이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관련 조항이 없었습니다. 이후 미국에선 셰일오일이 개발되고 지금은 수출 수요가 생겼습니다. 관련 조항들을 신설하려면 NAFTA를 개정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NAFTA와 한·미 FTA의 차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잡힌 외교를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한국과 미국은 안보뿐 아니라 무역, 문화, 교육 등 많은 분야에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미국은 1950년 6·25 전쟁에 참전한 이후 한국과 수많은 공동이익을 누려왔습니다. 양국은 그런 공통이익을 더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조그만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닙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고 했는데, 한국의 역사를 보면 미국이 더 좋은 친구인지, 중국이 더 좋은 친구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내에선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끊으면 북한이 미국을 겨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 주장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국익은 아주 많이 겹쳐 있습니다. 양국은 이익을 키우고 확대해야 합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우리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번영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뿐 아니라 중동, 세계 전체에 도움이 됩니다. 양국은 무역 분야는 물론 정보기술(IT) 등 산업 분야 협력도 탄탄합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 복지 확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과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둔다는 계획입니다.

“공적 영역을 확대하고 세율을 높이는 건 한국이 직면한 경제적 도전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기업과 개인이 좀 더 많은 인센티브를 갖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정부가 톱다운 방식으로 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부가 직접 하기보다 교회, 사찰 등 민간 영역에서 극빈자들을 도와주는 걸 지원하는 식이면 더 효과적일 수 있겠죠. 민간 영역이 활동할 수 있게 개혁하고 육성하면 문제는 더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이런 새로운 접근법을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그저 돈을 던져주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 주변에선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창의적으로 규제를 풀고, 시장을 개방하면 중소기업도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미국에도 40~50년 전 큰 정부와 강성노조, 거대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지금은 실리콘밸리에서 한두 명의 창의적인 생각이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모든 것을 규제하고 관리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 에드윈 퓰너는

미국 워싱턴 정가(政街)에서 내로라하는 친한(親韓)파로 통한다. 1973년 헤리티지재단을 설립해 1977년부터 2013년까지 36년간 이사장으로서 미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키웠다. 이달 초 4년 만에 다시 이사장을 맡았다. 헤리티지재단은 한·미 관계와 북한 문제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미국 대통령선거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권 인수위원회 선임고문을 지내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멘토’로 활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졸업한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71년 한국을 처음 찾은 이후 매년 두세 차례 방한하고 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 친분이 두텁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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