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의 정치권에 대한 소신 발언은 미국 경제계에서는 새로울 게 없다. ‘보호무역주의’와 ‘반(反)이민주의’ 등을 내건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기업인들로부터 ‘쓴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밥 아이거 월트 디즈니 CEO(최고경영자) 등 미국 30대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은 지난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광고를 통해 “파리 기후변화 협약 탈퇴 공약을 철회하라”는 공개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페이스북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97곳과 엘러간 등 바이오·제약기업 116곳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집단적으로 반대를 표명하기도 했다.
요즘 한국 경제계에선 이런 말들을 듣기가 힘들어졌다. 투자나 입지, 세제 등 경영활동을 압박하는 규제 정책이 쏟아지더라도 미국에서처럼 당당하게 반대 소신을 밝히는 기업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기업은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일갈해 주목받았던 기억이 아련할 뿐이다. 기업인들이 정부에 할 말을 하기는커녕 정권이 바뀔 때마다 ‘풍향’을 살피기에 급급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기업이 경영 정도(正道)를 걷고 있다면 정부와 정치권에 주눅이 들 이유가 없다. 명백히 잘못됐거나 부적절한 정책과 조치를 공식 통로가 아니라 로비 따위로 해결하려 드는 현실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기업할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NAFTA 재협상’ ‘이민 제한’ 등 대통령의 핵심 정책도 반대할 수 있는 미국 기업인들의 당당함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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