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징병검사는 군생활 적응 평가를 우선해야

입력 2017-05-15 18:37  

정신과적 증상 있으면 군 적응 못하지만
가족과 갈등 등 입대후 해결될 수도 있어
성격적인 문제도 신검서 걸러내도록 해야

강병훈 <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 정신과·소아정신과 전문의 >



현행법상 만 19세의 한국 성인 남성은 누구나 징병신체검사를 받게 돼 있다. 그 결과에 따라 현역으로 입대할 수도 있고 사회복무요원으로 집에서 출퇴근하기도 하며 병역면제가 되기도 한다. 이전에 비해 기간도 단축됐고 군대문화도 개방적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복무는 본인과 가족에게 많은 불안을 안겨주는 스트레스 요인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심리적인 문제, 정신과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적응할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이 나이에 해당되는 남자 환자를 볼 때면 늘 군대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시기 환자들은 의외로 군대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에 한번 놀라게 되고, 그런 관심이 주로 두려움과 불안에서 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의외로 병역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적다는 데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결국 주목해야 할 점은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데에는 당사자 의지보다 적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우선한다는 점이다. 종종 입대 후 훈련소에서 적응하지 못해 귀가 조치된 뒤 병원을 찾아올 때가 있는데 이런 환자들은 이전에 정신과적인 문제로 진단받은 사례가 많다. 장애에 해당될 정도는 아니지만 정상 지능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계선 지능으로 진단받거나, 역시 장애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사회성과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보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았다면 학교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었더라도 군대에서는 적응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과거에 정신과적 진단을 받았다면 반드시 징병신체검사 전에 병원을 방문해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일상생활에서 문제되는 증상과 군생활에서 문제되는 증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분노 조절이 안 되고 충동적인 성격을 보일 때가 이에 해당되는데 학교나 가정에서 분노 조절이 안 되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라도 평소에는 크게 소리를 지른다든지 하는 나름의 방법을 통해 어려움을 해소해 나가는데 이런 방법들은 가까운 사람들의 양해와 배려를 전제로 하거나 자신만의 공간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그러나 군생활에서는 이런 방법이 대부분 제한돼 있어 분노 조절, 충동 조절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군대는 총기와 폭발물이 가까이 있는 만큼 이런 분노 조절, 충동 조절의 문제가 드러나면 본인과 주변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

그 외에도 대인기피, 사회공포 등의 문제가 있는 환자는 입대 후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사례를 많이 본다. 따라서 어떤 정신과적 증상이 있으면 현재 문제가 되는지보다 군대에 입대해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지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때로는 현재 문제되는 증상이 있더라도 군 입대 후 문제가 소멸되는 경우도 보게 된다. 가족관계에서 발생한 갈등을 통해 우울감을 보이면 군입대 후 가족과 분리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될 때가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신과적 진단이 아니라 성격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군대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성격적인 문제가 있다면 자신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대상에 과도한 공격성과 분노감을 드러낼 수 있다. 의존적이거나 회피적인 성격 문제를 지니는 경우 자신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군대 내 따돌림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분열성 성격 등도 집단 생활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환자들은 구체적인 증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문제가 간과될 때가 많은데, 앞으로는 이런 성격적인 문제도 징병 신체검사에서 폭넓게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군대 내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가해자나 원인 제공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강병훈 <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 정신과·소아정신과 전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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