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망 책임 서로 떠밀며 벌어지는 추리스릴러
카카오페이지서 45회 연재…문학부문 열람 1위
제목·저자 가린 이색 마케팅에 벌써 7천여부 판매
[ 심성미 기자 ] “사실이 아니잖아. 바꿀 생각은 있어?” “뭐가 사실이 아니라는 거야? 내가 똑같이 하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친구가 죽었다. 사고 현장엔 죽은 이의 친구 세 명이 함께 있었다. 사건을 감추고 8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나 사건을 재연해보는 주인공들. 하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사건은 저마다 딴판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2017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박유경 씨의 《여흥상사》(은행나무)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은행나무가 지난달 1일부터 제목과 저자를 가리고 판매한 블라인드 책 이벤트 ‘개봉열독 X시리즈’로 선보였다. 은행나무는 17일 포장을 벗기고 표지를 공개했다.
《여흥상사》는 우연히 친구의 죽음에 휘말린 세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낸다. 화자인 주은과 주은의 남자친구 재우, 재우의 단짝 영민은 고교 시절 영민의 집에 모여 함께 어울린 친구들이다. 영민은 고교 시절의 치기로 남학생 사이에서 ‘짱’으로 통하는 호수를 납작 눌러 제 아래에 두고 싶어진다. 재우의 주도 아래 향정신성 약을 호수가 팔게끔 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호수를 골탕먹이려던 계획은 틀어지고, 영민의 집에 모두 모인 어느 날 영민과 호수는 몸싸움을 벌인다. 그러다 순전히 우연에 의해 호수가 목숨을 잃고, 셋은 호수의 죽음을 은폐해 버린다.
8년 뒤 외국에서 지내던 영민은 다시 한국에 들어와 재개발지역으로 묶여 인적이 드문 자신의 옛집, 호수가 죽은 그 방을 호수가 죽은 날 그대로 꾸미고 재우와 주은을 불러들인다. 다시 그 일을 재연해 각자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자는 것. 영민이 쓴 대본에 영민 자신은 호수의 죽음과 직접 연관이 없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재우나 주은도 “나는 목격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작가는 ‘가해’와 ‘피해’의 객관적 사실이 개인의 기억으로 인해 뒤바뀌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파헤친다. 그는 “불완전한 자신의 선악 판단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우리가 믿는 것이 선이고 너희가 믿는 것은 악’이라며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현 세태에 문학적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이 발간된 이후 일부 독자는 이 같은 내용을 주인공의 ‘성장 서사’로 해석했지만 작가는 “오히려 주인공 주은은 소설 끝머리까지 성장하는 데 실패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성장은 결핍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지만 주은은 끝내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 어두운 인간의 본성을 뿜어내는 주은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길 바랐고, 주은을 괴물이라고 여겨주길 원했습니다.”
이 소설은 한 번 펼치면 놓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하다. 8년이 지난 뒤 사건이 다시 파헤쳐지면서 주인공의 삶을 점차 뒤덮는 불안에 대한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작가는 “롤모델인 미국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나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를 읽으며 문체를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X 시리즈’ 마케팅 효과까지 더해져 제목을 가리고 판매한 지난 6주간 이 책은 이미 7000부 넘게 팔렸다. 초판 2000부 판매도 어려워 중쇄를 찍을 수 있는 소설이 손에 꼽히는 출판 업계에서 크게 선전했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공모전 당선작으로 책을 내놓으면 독자들이 편견을 가지고 선뜻 선택하지 못할 것 같았다”며 “작가의 명성보다는 출판사에 대한 독자의 신뢰로 승부해보자는 전략이 먹혔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지난 3월19일~4월24일 카카오페이지에 사전 연재돼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45회로 나뉘어 연재되는 동안 누적 구독자 수는 9만7000명에 달했다. 연재 기간 문학 카테고리에서 열람 수 1위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모았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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