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7편에 해외 호평 이어져
감시와 고통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의 아픈 함성
세상에 전한 작가에 박수를…
북한작가, 세계를 울리다
우리가 북한문학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북한은 ‘문학’이 생산되기 힘든 풍토다. 모든 자유가 봉쇄된 곳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야 하는 창작은 결코 시도될 수 없는 영역이다. 북한에도 작가들이 있고 많은 작품이 양산되지만 일방적으로 체제를 찬양하거나 의도를 갖고 선동하는 것은 창작으로 볼 수 없다.
그간 탈북자나 그들을 취재한 이들이 쓴 북한 관련 책이 나오긴 했지만 제대로 된 창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북한 사람이 쓴 소설이 세계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디라는 필명의 작가는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의 현역 작가로 1950년생이라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쓴 7편의 단편소설은 각각 뛰어난 문학성을 지니고 있어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반디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체험과 그 속에서 삶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반디는 몇 개의 에피소드를 연결해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개인이 철저히 무시되는 닫힌 사회, 극한 가난과 고통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 엄청난 울림과 충격을 준다.
《고발》은 스토리에 동화돼 함께 달리지만 작가와 함께 벼랑 끝에 서서 침묵하게 되는 작품이다. 한참 생각해도 작가에게 건넬 말이 없다는 점에서, 한 올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가슴이 콱 막히고 만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그 안에서도 효도하고 정을 느끼며 살아내려는 그들의 안간힘에 눈물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7편의 작품은 가난과 억압의 최극단에 닿아 있다. 출신 성분 때문에 극복하기 힘든 굴레에 갇힌 남편을 보며 피임약을 먹는 아내를 그린 《탈북기》,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통행증이 없는 남자가 천신만고 끝에 고향땅을 밟지만 감시원에게 들켜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지척만리》, 갈피갈피에서 진한 아픔이 뚝뚝 흘러내린다. 김일성이 지나가는 1호 행사 때문에 엄청난 불편을 겪다가 기적적으로 수령님을 만난 오 씨, 그 사건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보여주는 《복마전》이 그나마 좀 가벼운 축이다.
《유령의 도시》는 조금의 여지와 아량도 없는 북한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양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선전지도부원의 아내 한경희는 심약한 아들 때문에 초조한 나날을 보낸다. 국경절 준비로 소음이 극에 달한 광장에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리고 세 살짜리 아들은 계속 경기를 일으킨다. 하는 수 없이 커튼을 쳤지만 “수령님의 초상화를 두려워하는 정신을 물려주었다”는 죄목으로 추방당한다. ‘어비’ ‘토영삼굴’ ‘공산주의 유령’ 등을 잘 배합해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유령의 도시》를 읽으면 숨이 턱턱 막히고 만다.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책
《고발》은 무엇보다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귀하다. 거대한 행사를 대하는 마음이 어떤지, 가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자유를 억압당하면서도 숨 쉴 구멍을 만드는 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가혹한 힘은 대체 뭔지,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가늠이 안 되는 고난 속에서도 생을 영위하는 이들의 아픈 함성을 세계에 전한 용감한 반디에게 박수를 보낸다.
‘겨울 해는 중대가리에 원두콩 굴듯 한다는데’ 같은 북한 특유의 수식어와 비유법, 독특한 언어를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힘들고 위험한 과정을 거쳐 북한에서 반출된 《고발》이 2014년 우리나라에서 발간되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세계 20개국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고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영국 작가단체 ‘펜’(PEN)으로부터 번역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 호평이 이어지자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과의 교류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고발》은 북한 사람들의 아우성을 온몸으로 전하는 작품이다. 제대로 파악하고 길을 나서야 튼실한 결실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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