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 결국 폐기 수순…공기업 개혁 '후퇴'

입력 2017-05-24 17:33   수정 2017-05-25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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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박근혜 정부때 공공개혁 차원서 출발

새 정부 들어서자마자 즉시폐기로 정책 선회
노사합의한 곳도 입장 바꿔

다른 공기업에도 영향…직무급제 논의 빨라질 듯



[ 이태훈 / 심은지 기자 ] 노사 합의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한국전력 노동조합이 이 제도의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새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시행한 공공·금융부문 성과연봉제의 즉시 폐기’를 약속했다. 이전 정부가 노사 자치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노조에 불리할 수 있는 제도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무리하게 추진한 측면은 있지만 그렇더라도 정부가 바뀌자마자 연봉제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공공부문 개혁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예견된 실패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지난해 도입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많았다. 공공부문 개혁의 일환으로 성과연봉제가 필요하다는 청와대 압박에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이 119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상반기 내 도입”을 밀어붙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을 포함해 정치권에서 “노사 합의로 도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지만 기재부는 “노사 합의가 없어도 이사회 의결만으로 도입할 수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법조계에서도 “성과연봉제 도입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조나 직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지난 18일 법원에서 “노조 동의를 받지 않은 성과연봉제 도입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며 우려는 현실이 됐다.

기재부는 새 정부가 들어서자 태도를 180도 바꿨다. 기재부는 24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성과연봉제 운용과 관련한 수정 권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기재부가 시행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성과연봉제 관련 점수는 전체의 3%다. 기재부는 내년부터는 성과연봉제 관련 가점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지침 기다리는 공기업

기재부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성과연봉제에 대해 ‘알아서 후퇴’하자 노사 합의를 거친 공공기관 노조마저 이 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한전 노조가 다음달 1~2일 대의원대회에서 성과연봉제 폐지를 논의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한전은 직원 수가 2만2000명인 국내 최대 공기업이다. 한전 노조가 내리는 결정은 다른 공공기관 노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예금보험공사와 주택금융공사 노조도 “작년 노사 합의는 무효”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형구 예보 노조위원장은 “작년 노조 총회에서 조합원 63%가 도입에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전임 노조위원장이 사측과 합의했다”며 “새 정부에 이런 상황을 이해시켜 사측과 재협의를 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들은 노조의 요구에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성과연봉제를 부분적으로 고치라는 건지 아예 폐기하라는 건지 정부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며 “지침이 내려질 때까지 사측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합의를 바꾸면 노사 합의가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많은 공공기관이 평가로 상여금도 받았는데 이를 되돌리면 번복 비용이 너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직무급제가 대안?

문 대통령은 성과연봉제의 대안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제안했다. 직무급제는 연공서열이 아니라 업무 성격이나 난이도, 직무 책임성에 따라 임금에 차이를 두는 제도다. 기재부는 한국노동연구원에 직무급제 도입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맡겼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무급제는 단순히 임금만 바꾸는 게 아니라 채용과 인사, 경력 시스템을 모두 바꿔야 한다”며 “공채로 일괄 채용하는 국내 기업 특성상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 교수도 “성과연봉제는 기본급에 성과급만 얹는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직무급제는 직무에 대한 임금과 난이도 등을 설계해야 한다”며 “공공부문 임금문제의 해결책을 직무급으로 찾는 건 더 어려운 과제를 던지는 꼴”이라고 했다.

이태훈/심은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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