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 정책에 '우려' 표명하자…문재인 대통령 "경총, 반성부터 하라" 이례적 경고

입력 2017-05-26 18:13   수정 2017-05-27 06:27

"사회 양극화에 경총도 책임 있다" 비판
경제계 "이러면 앞으로 이견 말하겠나"

'정규직 전환' 문제점 지적한 경총에 국정기획위도 발끈
김진표 "재계, 압박으로 느껴야"
경총 "정부정책 비판 아닌 노동계 불합리한 주장 반박"



[ 김일규 / 좌동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 한국경영자총협회를 향해 26일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경총이 전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핵심으로 하는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문제제기를 한 데 대해 문 대통령이 직접 유감을 밝힌 것이다.

앞서 새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박광온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강한 어조로 경총을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한 경총의 비판은 지극히 기업 입장에서의 아주 편협한 발상”이라며 “경총의 발표 내용은 새 정부의 정책을 심각하게 오독하고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역시 ‘박 대변인 발언에 재계가 압박을 느끼지 않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계가) 압박으로 느낄 땐 느껴야 한다”고 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전날 경총포럼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획일적으로 추진할 땐 산업 현장의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며 “이는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경총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요구하며 이견을 밝힌 수준인데 새 정부가 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대통령 지시사항에 이견을 말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해놓고 순수 민간 경제단체의 주장에 ‘재갈 물리기식’으로 대응하면 어느 누가 정부 정책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대해 강한 유감을 드러낸 이유는 경총이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곡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이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모범을 보이고, 이것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게 하려는 것”이라며 “이를 민간에 강제한 것처럼 (경총이) 얘기하는 것은 오독”이라고 말했다. 정책에 대한 이견 정도가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청와대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청와대와 국정기획자문위의 민감한 반응은 새 정부 정책에 대한 재계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기자들과 만나 “(재계가) 압박으로 느낄 땐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경총이 전날 포럼에서 주장한 내용의 핵심은 노동계의 불합리한 요구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새 정부가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아웃소싱(외주)’을 비판하는 노동계 주장에 대해 “주력 업무가 아니라면 전문업체에 아웃소싱해 그들의 인력과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이 당연하고 효율적”이라며 “좋다거나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갈등만 부추기고 사회 전체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경총 관계자는 “김 부회장의 발언은 노동계의 불합리한 주장을 반박한 것”이라며 “새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과거부터 일관되게 내놓은 의견”이라고 해명했다.

경총이 회원사인 민간 기업들을 대변한 것을 두고 대통령이 직접 유감을 드러내자 재계는 크게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앞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공식 의견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기업을 대화의 파트너가 아니라 적폐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일규/좌동욱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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