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우선 추진하겠다고 나선 정책 중 하나가 중소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 인하다. 중소 사업자가 카드로 결제대금을 받을 때 신용카드사에 내는 수수료를 낮춰 주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여야 공통 공약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중소 가맹점 수수료율을 현 1.3%에서 1%로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유승민 전 바른정당 후보는 우대 수수료를 적용받는 영세 가맹점 수를 늘린다는 공약을, 심상정 전 정의당 후보는 신용카드 수수료를 1%로 제한하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카드 수수료 인하가 최우선 정책이 된 것은 이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반발을 누를 수 있을 것이란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본다. 5년 전 카드 수수료를 내릴 때 큰 힘 들이지 않았다는 학습효과도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5년 전 김석동 반대에도 강행
2012년 초로 돌아가 보자.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도 카드 수수료를 낮추겠다며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에 나섰다. 그해 4월에 치러지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몇 달 앞둔 시점이었다. 개정 방향은 크게 세 갈래. 첫째 가맹점별 수수료 차별을 금지하고, 둘째 영세 가맹점에는 우대 수수료를 적용하며, 셋째 카드사 원가를 고려해 합리적 수수료 체계를 정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를 이끈 김석동 위원장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논리는 간단하면서도 분명했다.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민간의 가격인 카드 수수료율을 정부가 정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대로 밀어붙여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나쁜 입법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우려도 전달했다. 원가를 고려해 합리적 수수료율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행정부의 이 같은 반대는 ‘소 귀에 경 읽기’에 불과했다. 국회는 그해 2월 상임위원회에서, 3월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일사천리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들은 일치단결해 소관부처 수장의 의견을 ‘공허한 외침’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대형 가맹점 수수료가 중소 가맹점 수수료보다 비싸졌다. 남대문시장에서 50만원어치를 사면 10만원어치를 살 때보다 할인을 더 받을 수 있는 것과는 정반대 구조가 만들어졌다.
시장경제 원칙 안중에도 없어
민주당이 주도하는 지금 상황은 5년 전보다 더 수월해 보인다. 당장 시장경제를 거론할 수 있는 금융위원장이 공석이나 다를 바 없다. 임종룡 위원장은 사표를 냈고 후임은 정해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임명하는 후임 금융위원장이 대통령 공약 추진 사항을 놓고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대통령 생각과 다른 의견을 냈다가 경고장까지 받아든 처지다. 여신금융협회장이나 카드회사 사장들은 수수료와 관련해 어떤 견해나 목소리도 내지 않을 공산이 크다.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는 내리는 대신 현금서비스나 카드론을 어떻게든 늘리는 쪽으로 대응할 것이다.
현재 국내 카드사들 수익 중 60%가량은 본업이 아니라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에서 나온다. 이미 왜곡된 구조다. 외국 카드사들은 본업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얻는다. 카드사발(發) 위기가 외국에는 없고 한국에서만 터진 이유다. 정치권은 시장경제 원칙에 귀를 닫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나중에 책임질 것인가.
박준동 금융부장 jdpow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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